정부의 정책금융기관 재편이 표류하고 있다.
여러 기관으로 분산된 기능의 통폐합도 문제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선박금융공사 설립 문제와 엮이면서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 개편 태스크포스(TF)가 본격 가동되고 있지만 선박금융공사 문제는 논의 조차 하지 못하면서 절름발이 결과물이 도출될 판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정책금융 재편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8일 금융감독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정책금융기관 재편은 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이 비교 우위에 선 가운데 KDB산업은행(이하 산은), 정책금융공사 등 관련 기관들이 비교열위에 있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초 정책금융 재편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됐던 산은의 역할은 축소될 조짐이다. 산은과 정책금융공사의 통폐합이 관건이지만 분리된지 4년 정도 된 두 기관을 합치기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 두 기관 내부에서 생존권이 달린 만큼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가 감지될 정도다.
사실상 한 가족인 산은과 정책금융공사 통합이 무산될 경우 정부의 정책금융 재편 의지는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두 기관은 신성장동력산업 지원이나 해외자원개발 등 전 영역에서 기능과 업무가 중복돼 왔다. 그런만큼 두 기관의 통합은 상징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수은 중심의 기능 재편 논의가 한창이다. 기업들의 수출자금 지원 등 대외정책금융업무가 수은을 중심으로 일원화될 것이라는 최근의 분석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달 초 국가미래연구원은‘정책금융 개편 방향’보고서에서 정책금융을 △대외산업정책금융 △대내산업정책금융 △중소기업정책금융 분야로 재편할 것을 주문했다. 대외산업정책금융의 경우 수은과 무역보험공사(이하 무보)의 통폐합을 전제로 깔고 있다.
전체적인 무게 추는 수은 쪽으로 기울고 있다. 수은이 무보의 기능과 정책금융공사의 자본을 이관받는 방식으로 기능 통합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감독당국이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해 논란이 일단락 된 듯 해 보이지만 언제든 수면위로 부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관련 기관간 물밑 신경전은 계속되고 있다.
선박금융공사 설립 문제도 난항을 겪고 있다. 선박금융공사 설립은 특정 산업에 대한 정부지원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될 위험이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제각각 법안을 발의한 점도 상황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이 경우 수은은 선박금융부문을 떼내야 한다.
일각에서는 정책금융기관 재편을 진두지휘 할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책금융기관 재편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중소기업청 등 정부부처간 이해관계도 얽혀 있어 의견조율이 쉽지 않다.
부처·기관이기주의가 고개 들 경우 개편은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때문에 이해 관계자 중 하나인 금융위가 아닌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등이 컨트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