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간의 여정을 마친 JTBC ‘히든싱어2’가 3회에 걸칠 왕중왕전의 신호탄을 울렸다. 임용 고시를 3일 앞두고 출전해 준우승을 따낸 장서윤(김윤아), 팝페라 가수 장진호(신승훈), 농부 전철민(김범수) 등 원조가수와 겨뤄 우승 또는 준우승을 차지한 막강 모창 가수들이 대거 등장한 11일 방송의 모창 능력자들은 원조가수의 완곡을 선보이며 현장 관객과 시청자의 눈과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날 방송분은 시청률 5.891%(닐슨 코리아 제공, 유료가입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화제를 입증했다.
이날 방송에서 단연 시청자의 마음을 훔친 것은 모창 가수들의 실력이었다. 김범수 편에 준우승자 전철민은 김범수의 지난 소극장 콘서트 10회 무대에 모두 함께 오르며 그의 실력을 바로 옆에서 곁눈질할 기회를 가졌고, 이는 김범수와 더욱 똑같은 목소리를 갖추는 데 일조했다. 아이유의 노래를 한 소절씩 불렀던 본편과 달리, ‘너랑 나’를 댄스와 함께 라이브로 꾸민 김연준의 무대는 보는 이들을 자연스레 빨아들였다.
이처럼 모창 가수로 대중과 만났지만, 원조가수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거나 나날이 늘어가는 이들의 실력은 시청자를 만족하게 하고 있다. 이들이 등장하는 ‘히든싱어’ 시리즈는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아온 기존의 프로 가수와 모창 가수를 대비시키며 묘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가수와 모창 가수의 접점을 유발하는 장점 외에도 기존 음악 예능프로그램과 차별성은 또 있다. 최근 몇 년간 엠넷 ‘슈퍼스타K’ 시리즈로 촉발된 오디션 프로그램의 광풍으로 MBC ‘위대한 탄생’ 시리즈, SBS ‘K팝스타’ 시리즈 등이 쏟아졌지만, ‘어릴수록, 예쁘고 멋질수록, 끼가 다분할수록’ 다음 라운드 진출의 당락을 쥔 심사위원의 눈에 들 확률이 높아졌고, 이는 음악 외적인 면모가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경향을 만들어 시청자의 아쉬움을 샀다.
이러한 풍경 속에서 ‘히든싱어’ 시리즈는 신인 발굴의 또 다른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11일 방송에서 직업이 공개된 ‘논산 가는 조성모’라는 별칭의 임성현에게 시청자는 주목했다. 조성모 원곡의 ‘슬픈 결혼식’ 라이브가 끝나자, 김경호는 그에게 “창법이 더욱 완숙해졌다”, 휘성은 “너무 아름다웠다. 소름이 돋았다. 다른 노래들을 더 들어보고 싶다”고 감동을 표했다. 뮤지컬 배우라는 사실이 이날 알려진 임성현은 곧 입대에 갈 계획을 갖고 있어 시청자의 아쉬움을 이끌어냈다. 또, 2011년 SBS ‘스타킹’에서 이국적 외모와 빼어난 가창력으로 화제를 일으켰던 13세의 어린아이였던 샤넌은 이번 ‘히든싱어2’에 나와 소녀로 성장한 모습으로 시청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공동 준우승을 차지하며 왕중왕전 다음회의 출연을 앞두고 있는 샤넌은 아이유로부터 “원래 실력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나를 모창한 것이다. 자신만의 개성을 바탕으로 본래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고 평을 받은 바 있다.
이렇듯 단순히 원조 가수를 모사하는 것에 그치는 끼뿐만 아니라, 감탄을 넘어선 감동을 선사하는 모창 능력자들은 무대 그 자체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재평가 받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특히 ‘히든싱어’ 시리즈만의 포맷 덕분이다. 불우한 가정사로 점철된 보통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프로그램명처럼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문 뒤에 숨어 라이브 목소리만으로 현장을 가득 메우는 방식은 시청자와 현장관객으로 하여금 오로지 귀를 쫑긋 세우며 음악에만 집중토록 한다. 시각적이고 자극적인 댄스나 퍼포먼스 또는 반복성의 후크송에만 길들여진 최근 음악 리스너(Listener)들에게는 음악의 본질에 더욱 가깝게 하는 ‘히든싱어’ 시리즈만의 포맷이 큰 장점으로 발휘되고 있다. 이를 통해 스타 탄생이 이뤄진다면 시청자는 그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실력파 모창가수의 감동 무대에 간밤이 떠들썩했던 가운데, 12일 오전 12시 15분 지병인 간암으로 투병 중이던 ‘너훈아’ 김갑순이 향년 57세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했다. 너훈아, 남진, 임희자, 현찰, 조형필 등 소위 ‘이미테이션 가수’라 불리던 이들은 밤무대 또는 지역 중소 축제에서만 서며 한 세상 관객과 만났다. 가수에 큰 뜻을 품었지만, 모창가수, ‘짝퉁’가수 등 B급, C급으로만 불리웠던 이들의 한 세상도 저물고 있는 듯해 한 켠 아쉬움도 자아낸다. 이들은 대부분 대중에게 단순히 누구의 모창가수로만 여겨지며 외면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고유한 소울을 뽐낼 수 있는 잠재력으로 무장한 모창가수중 일부가 그나마 대중의 시선을 끌며 재발견 될 수 있었던 것은 ‘히든싱어’ 시리즈 무대가 있고, 대중이 열광했기 때문이다. 스타탄생을 기대케 하는 ‘히든싱어’ 시리즈 조홍경 보컬트레이너는 “최근 몇 년간 가수 지망생들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넌 누구와 똑같아서 안돼’, ‘누구를 연상시켜’라는 말로 가수될 기회를 죽이고 꿈을 접어왔다”라고 토로했다. 신승훈도 밝혔듯, 그는 모창가수로서 시작해 오늘날 국민가수의 타이틀을 얻었고, 자타공인하는 최고의 R&B 요정 박정현도 팝가수 머라이어 캐리를 수만 번 따라했던 소녀였다. 국민 오디션 시대라고 할 정도로 가수가 될 기회는 많아진 반면, 일원화된 시각으로만 평가받느라 가수를 꿈꾸는 지망생의 싹도 잘렸다. 개개인이 가진 개성 역시 대형 기획사 또는 현재 트렌드 맞춤형 창법만으로 가름돼 기회를 갖는 현실 속에서 진일보한 모창 가수들이 꾸미는 ‘히든싱어’ 시리즈만이 던지는 의미는 독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