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배우 정우와 도희에게 지난해 화제작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속 사투리의 몫을 물었더니 절대적 비중이었다고 한목소리로 인정했다. 부산, 순천, 삼천포, 여수 출신의 극 중 인물이 선보인 사투리는 드라마 소재를 더욱 풍성하게 한 것은 물론 실감 나는 재미까지 안겼다. 캐릭터의 매력을 더해, 경상도 남자 쓰레기(정우)와 삼천포(김성균)의 무뚝뚝하면서도 속 깊은 면모를 표출시키고, 오지랖 넓고 털털한 나정(고아라)을 때로 안아주고 싶은 귀여운 여동생으로 보이게 한 것 역시 사투리였다. 사투리는 분명 ‘응답하라 1994’의 성공 요인 중 하나다.
‘응답하라 1994’로 촉발된 사투리 열풍은 최근 영화계까지 번지고 있다. 영화 ‘피 끓는 청춘’의 청춘스타 이종석, 박보영은 충청도 사투리, 영화 ‘수상한 그녀’의 심은경, 나문희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전면으로 내세웠다. 주변부로 치부되던 사투리의 소재화는 반가운 일이다.
일례로, 서로 간 친밀한 관계로 맥락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전라도 말 ‘거시기’는 공동체 문화의 특성을 엿볼수 있다. 지역 특색의 문화, 사람, 역사를 담고 있는 사투리는 생활사의 보고로서 지켜나가야 할 우리의 중요한 자산이다. 그럼에도 사투리는 오만한 획일적 표준어 정책으로 인해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대중에게 세련되지 못하거나 저급한 것으로 취급돼왔다.
우리의 인식 속 편견으로 자리한 사투리는 대중매체와 대중문화를 통해 재평가된다. 극단적으로 흐르고 있는 서울 중심 문화에서 탈피하게 해주며 문화 다양성을 확대한다. 또, 대중매체와 대중문화 속 사투리는 지역의 생활문화를 복원하는 기능까지 한다. 이처럼 대중매체 속 사투리 열풍은 우리가 간과해온 사투리의 장점을 부각해준다.
한편 씁쓸함도 있다. 사투리 열풍도 좋지만 일부 매체와 대중문화에서 비춰지는 사투리는 그 자체가 지닌 온전한 고유 가치를 전달하기보다 흥미 위주의 수단으로 쓰인다. 주인공과 조연, 주류와 비주류의 직업과 배경 등에서 눈에 띄게 구분된 사투리는 이미 그 자체 내에서 서열화됐다. 치우친 틀 안에서 지역의 고정된 이미지를 사투리를 통해 재생산한 것도 우리 대중매체가 반복해온 실수다.
드라마와 영화, 개그 소재까지 그 범위와 장르를 불문하고 활용된 사투리는 이제 지역 문화의 복원이라는 큰 의미이자 지역민에 대한 자부심을 부여하는 계기로 발돋움 해야 한다. 사투리를 통해 보여주는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은 벗어던지고, 사투리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창의적 태도를 모색해야 한다. 전라도 말씨의 의사들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알콩달콩한 경상도 남자와의 따뜻한 로맨스가 과연 어려운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