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국의 경제 현실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 한국의 가계 순저축률은 매우 낮지만 국민 총저축률은 2012년 30.9%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총저축이 국내투자를 충분히 충당하고 있어 경상수지도 흑자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총저축률은 높은데 가계저축률이 낮은 것은 가계 외의 다른 부문, 즉 기업의 저축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은 가계, 즉 개인들은 돈이 없어 저축을 못하고 있지만, 기업은 돈이 넉넉해 저축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업 중에서도 어려운 곳은 있지만 기업부문 전체로는 가계부문보다 소득이 크게 늘어나 여유가 많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투자도 부족하다기보다는 건설투자 중심으로 과잉 상태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국민소득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2년 28%로 1990년 중반 35% 수준에 비해서는 많이 낮아졌지만 독일, 일본, 대만 등의 20% 수준에 비해서는 월등히 높다. 이렇게 국민소득 중 투자 비중이 높은 상태가 20년 이상이나 지속되고 있어 국민경제의 자본총량은 경제여건에 비춰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여기에다 건설투자의 경우 이용객이 거의 없는 지방공항, 예상 수요에 턱없이 못 미쳐 세금으로 수익을 보전해 주고 있는 민자 건설사업, 다니는 차를 구경하기 어려운 지방도로, 수도권의 미분양 아파트 등의 사례를 볼 때 이미 과잉상태다. 설비투자의 경우도 많은 대기업이 현금성 자산을 충분히 갖고 있어도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이는 현재 경제 상황에서는 투자가 거의 포화상태에 와 있어 수익이 날 만한 투자처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와 반대로 한국은 민간소비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3%로 미국의 70%, 독일·일본의 60% 수준에 비해 크게 낮다. 소비부진은 기업이 생산한 물건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 부족을 초래해 기업투자를 위축시킨다. 또한 주변 자영업자의 어려움도 소비부진과 관련 깊다. 국민경제 전체로 보면 저축과 투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비가 부족한 것이다. 즉 기업은 소득이 빠르게 늘어나 저축을 아주 많이 하고 투자도 할 만큼 하고 있는 반면, 가계는 소득이 정체돼 있어 써야 할 돈을 쓰지 못하고 저축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계 소득이 늘어나야 소비도 하고 저축도 한다. 특히 중·하위 계층의 소득이 늘어나야 한다. 상위 계층은 이미 충분한 소비와 저축을 하고 있어 소득이 늘어도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소비는 늘어나기 어렵다.
국민소득은 최종적으로 기업 소득과 가계 소득으로 분배되기 때문에 가계 소득을 늘리기 위해서는 국민소득 전체의 크기를 키우거나, 기업과 가계 간 소득분배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잠재 성장률이 크게 낮아져 과거처럼 7~8%씩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의 허망한 실패가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기업 소득이 가계 소득보다 2배 이상 빠르게 늘어왔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기업 소득과 가계 소득 간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지 않고 기업 소득보다 가계 소득을 더 늘려야 한다. 그리고 계층 간 갈등을 키우지 않고 중하위 계층의 소득을 더 늘려야 한다. 이런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부가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정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