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그의 정치에는 철학과 비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 정치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철저한 고민도 없었다.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생각도 잘 읽을 수가 없었다.
야구나 축구로 치면 수준 이하의 경기를 보는 관중의 한 사람 같았다. 그라운드를 뒤 덮는 야유에 고개를 끄덕이며 장탄식을 해대는 사람, 그러면서도 막상 감독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선수로 뛸 능력도 없는 그런 사람 같았다.
오히려 성공할까 걱정이 되었다. 형편없는 경기에 짜증난 관중들이 그의 장탄식에 매혹되어 그를 감독이나 선수로 옹립하면 어떻게 될까.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순간 넘어지고 자빠지고, 그러다 새 정치라는 말만 오염시키지 않을까 불안했다. 그래서 말했다. 그의 정치에 너무 큰 희망을 가지지 말라고.
민주당과 새 정당을 만들기로 했다는 보도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금까지의 생각이 과히 틀리지 않았구나.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하지만 어째 이 모양인가. 명분이라도 좀 그럴 듯하게 포장하지. 지방선거에 공천을 하고 말고가 계기가 되었다는데 그게 과연 개혁대상이라 했던 정당과 통합하는 명분이 될 수 있나. 그렇게 하면 새 정치가 되는가. 제대로 된 명분조차 만들 능력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그 정도로 급하다는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정치의 문제는 실력이 형편없는 두 팀, 즉 두 거대정당이 국민감정을 자극하며 그라운드를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 실력 쌓는 일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너 아니면 내가 이기는 판, 국가와 국민의 문제는 뒤로 한 채 패거리 지워 상대방 욕이나 하는 ‘쉬운 정치’만 하고 있다.
이런 판을 뒤집고자 했으면 각오도 단단하고 비전도 분명해야 했다. 이기고 지고는 생각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지면 지는 대로 아쉬움을 남길 수 있고, 이러한 아쉬움이 새 정치를 위한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비전도 각오도 없이 떠밀리듯 그라운드에 들어섰고, 그 후에는 시종 이기고 지고의 문제만 생각하는 듯했다. 뜻을 세워 세상을 바꿀 세(勢)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주어진 ‘세(勢)’를 지키고 늘리는 데만 신경을 썼다. 구 정치와 한 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는 여전히 성공할 수 있다. 아니, 성공의 가능성은 더 커졌다. 세속적인 성공을 말하는 것이다. 지방선거 승리의 주역이 될 수도 있다. 거대 정당의 거대 지분을 가진다니 사람들이 모일 수도 있다. 사분오열 될 당내 구도를 잘 이용하면 당권을 쥘 수도 있고, 대통령후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성공하든 이제 새 정치는 그 속에 없다. 이기면 그만이라는 구태의 승리, 세(勢)로써 세(勢)를 확장해 나가는 구 정치와 정치공학의 승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그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관중들의 이중적 태도, 즉 형편없는 경기에 늘 실망하다 마지막 순간에는 무슨 수를 쓰던 ‘우리 편’이 이기기만을 원하는 태도가 이런 상황을 만든다. 그런 점에서 그는 오히려 피해자일 수도 있다.
“지사(志士)는 옳아야 한다. 장수는 이겨야 한다. 정치인은 옳고 바르게 이겨야 한다.” 고 노무현대통령의 말이다.
허구한 날 상대방 욕이나 해 대다가 선거 때만 되면 단일화나 야권통합의 정치공학에 목을 매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이 짓는 오늘의 웃음을 준엄하게 꾸짖어 주자. 옳고 바르게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자.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표를 던질지언정 그렇게 하자.
그리고 선거 때만 되면 이기고 지는 것만을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 그것이 옳고 바르게 이기게 하는 길인지, 또 경기를 경기답게 만드는 길인지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