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직접적 가해자로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일가가 지목되어 검거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추적 중이다. 그러나 그들의 배후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검은 집단은 물론, 이러한 악의 무리를 척결하지 못하고 방치한 우리 모두가 사실상 세월호 참사의 가해자들이다. 이런 점을 우리는 이제라도 통절히 반성하고 진정한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대형 참사를 겪으면서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총기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총기 문제가 사회 문제로 부상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총기에 의한 자살, 범죄행위 등이 간헐적으로 보도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도 총기의 안전지대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선제적으로 총기 문제에 대비할 지혜를 짜내는 것이 필요하다.
총기 문제는 역시 미국의 경우를 들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 국민의 자유와 복지가 꽃피는 나라라는 칭송을 들으면서도 늘 총기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이 총기에 의해 집단적으로 살해되는가 하면, 대학 캠퍼스, 영화관, 도심의 거리, 패스트 푸드점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총기난동으로 숨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인들은 일반시민들이 자유롭게 무기를 소지하여 스스로 자유와 생명, 삶의 터전을 지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미국 헌법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대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1930년대까지 미국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지배하여 대부분의 주에서 일반시민들의 무기 소지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조직범죄가 증가하자 1934년 미국 의회는 미국 대법원에 총기류에 제재를 가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도록 하였다. 이 법은 자동소총과 총신을 짧게 한 엽총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었다. 1939년 미국 대법원은 미국 헌법이 등록도 되지 않은 다량 살상용 무기를 허용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 대법원은 각급 지방정부가 권총의 사용을 금지하기 위하여 발한 조례를 합헌으로 인정한 하급 법원의 판결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1980년대를 거쳐 1990년에 이르러 미국 사회에서는 범죄와 폭력이 급속히 증가하여 큰 사회 문제가 되었다. 아울러 총기 규제와 관련된 이슈들도 미국 정치에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은 후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이 급등하였다. 미국 의회에서도 총기 규제법을 통과시키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레이건 대통령 저격시 부상으로 불구자가 된 당시의 대통령 공보비서 제임스 브래디의 부인인 세러 브래디가 총기 규제 운동의 선두에 서서 뛰었다. 그 결과 1993년 드디어 권총을 살 때 5일간의 유예기간을 두게 하는 연방법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미국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익단체인 미국총기협회가 강력한 반대 로비를 하였지만 1994년에는 폭력 범죄를 규제하는 강력한 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은 연방정부가 주 정부들이 경찰관을 증원하고 감옥을 증축할 수 있도록 재정보조를 할 뿐만 아니라 19가지 반자동 공격용 무기의 제조, 운송, 판매, 또는 소지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미국은 지금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헌법에 수정 조항을 달아 가면서까지 허용한 총기들이 시민의 자유, 생명, 재산을 도리어 위협하는 현실에 직면하여 만시지탄의 반성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범죄가 날이 갈수록 더 흉포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비록 우리에게는 먼 나라의 얘기같이 느껴지는 총기 문제이지만 수십만 정의 불법 총기가 깔려있다는 소문을 낭설로만 치부하고 말 것인가. 예상치 못하던 안전문제가 돌출하여 국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끝없이 계속되는 안전 불감증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선량한 국민들이다. 총기 문제가 향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전에 우리는 지금 총기 문제로 곤경에 빠져 있는 미국의 경험에서 배우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