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들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최소한 만지기라도 해라.”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꼽히고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윈스턴 처칠(1874~1965)이 남긴 명언이다. 처칠의 책에 대한 예찬은 짐짓 미소마저 짓게 한다. “쓰다듬고, 쳐다보기라도 해라.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아무거나 눈에 띄는 구절부터 읽기 시작하는 거다.” 처칠은 수상록 ‘폭풍의 한가운데서’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책과 친구가 되지 못하더라도, 서로 알고 지내는 것이 좋다. 책이 당신 삶의 내부로 침투해 들어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서로 알고 지낸다는 표시의 눈인사마저 거부하면서 살지는 마라.”
처칠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꿰뚫고 이들을 어루만지면서 책을 가까이하기를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손녀에게 속삭이듯이 조언하고 있다.
처칠은 또 어린 시절부터 책을 너무 많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일찍 익은 사과는 일찍 상한다”는 그의 말은 둔재들에게 희망을 준다. 언젠가 처칠은 중요하다는 책은 다 읽었노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었다는 인상은 받았지만 깊이를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처칠은 “책을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독서한 내용 중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서 마음의 양식으로 삼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 있는 정신작용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독서는 오히려 빈 수레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가정교사에게 배운 처칠은 가정교사를 무서워했고 그 때문인지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처음 사립 명문인 세인트 제임스 학교에 들어갔는데, 적응하지 못하고 꼴찌를 했다. 이게 꼴찌의 서막이었고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지속하였다.
그러나 학과공부를 등한시했던 윈스턴이지만 비장의 습관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독서였다. 아버지마저 포기하려 했던 윈스턴이었지만 뜻밖에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선물로 준 바로 그 책 한 권이 지속적으로 책을 읽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 무렵 내게 기쁜 일이라면 오직 책 읽는 일이었다. 내가 아홉 살 반이 되던 때에 아버지는 내게 ‘보물섬’(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작)을 주셨는데. 이 책을 아주 열중해서 읽던 생각이 난다. 나는 내 딴에는 어려운 책을 읽었지만 반에서는 언제나 꼴찌였다. 선생님들한테는 이러한 점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나의 청춘기’에서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준 ‘보물섬’을 읽은 기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아버지가 준 책이 처칠 인생에 ‘보물섬’이 되어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