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담보 없이 기술만으로 대출을 실행하는 기술금융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실효성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등 온도차가 나고 있다.
업계는 정책적 개입을 통해 기술금융의 공급을 원활히 하고 기업의 혁신을 돕자는 방향에는 대체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문제는 속도라고 지적한다. 기술금융 확대가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만큼 보완책을 제대로 만들고 가야 하는데 너무 성급히 추진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기술신용 대출 기업을 늘리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꺼내들었다. 기술금융 실적이 우수한 은행에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 또 기술금융 취급 실적이 부진한 은행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은행권으로부터 기술금융 취급 실적을 매일 보고받는 방안도 마련했다.
반면 은행 영업점 등 일선 현장에서는 부실이 발생할 경우 면책이 된다는 규정을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피부에 와닿는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한 기존 대출 관행이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A은행 부장은 “대출을 실행했는데 부실이 생기면 인사상 불이익 등 개인에 대한 책임이 따르니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라며 “불이익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지 않는 한 일선 현장에서는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B은행 직원 역시 “은행원 입장에서 기술금융 취급 압박에 비하면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없다”고 꼬집었다.
자체 기술평가팀을 갖춘 은행을 제외하고는 기술평가 수수료에 대한 부담이 여전했다. C은행 지점장은 “기술평가 실력이 없는 상황에서 기술금융 대출을 하려면 전문평가회사(TCB)에 기술평가수수료를 100만원씩 내야 하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라며 “역마진 우려가 있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일선현장에서의 교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기술의 완성도 등 평가 결과나 기초개념에 대해 밀착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D은행 직원은 “중소·벤처기업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 인근 영업점을 제외하고는 (기술금융에 대해) 제대로 아는 직원이 없다”면서 “TCB, TDB 등 용어 자체가 어렵고 기술평가 보고서는 한국어가 맞나 싶을 만큼 이해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또 “기술가치 평가를 위해 전문 평가기관을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대출 승인에 외부 정보에만 의지할 수는 없지 않냐”라고 밝혔다.
은행권은 기술금융이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소통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는 곤란하다고 우려했다. 위험성이 큰 부실 대출을 낳게 되면 은행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BIS비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피해는 고스란히 은행 몫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아울러 다각적이고 전문적인 지식과 인적 자본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한편, 벤처캐피털(VC) 업계는 기술금융 활성화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기술만 있는 벤처기업이 수도 없이 생겼다가 없어질 만큼 성공 확률이 낮은데, 추가로 자금 유동성을 확보하면 기업 입장에서 분명 긍정적일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은행권의 기술평가 능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한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한 건의 투자를 하기 위해 몇 달씩 기술을 평가하고 검토하는데 은행은 몇 억 대출하기 위해 몇 달씩 검토할 만한 여력이 절대 안 된다”면서 “투자를 받는 것과 대출을 받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기술금융 활성화가 벤처캐피털 업계의 시장점유율을 낮추는 부작용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