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일관성 없는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혼선을 주고 있다. 당장 눈앞의 부동산 시장만을 즉흥적으로 부양하려다 보니, 쏟아지는 대책에서 뿌리를 내릴 만한 중장기적인 대책은 보기 어렵다.
1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번번이 내놓는 정책은 100년 앞을 내다본다는 큰 그림이어서 되레 시장만 흐리고 있다.
이번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굵직한 것만 7번. 지난해 4·1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을 시작으로 수도권 주택공급 조절방안, 서민 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전월세 대책, 전월세 대책 후속조처,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 새경제팀 경제정책 방향, 지난 9·1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 방안까지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폐지’, ‘주택구입자 양도세 한시 면제’ 등을 담은 지난해 4·1대책에는 ‘수직증축 리모델링’ 을 허용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근시안적인 대책으로 꼽히는 리모델링 사업.
지난 4월 사업이 본격 시행될 때까지만 해도 수직증축 리모델링 사업은 입주민은 물론 건설사들로부터도 큰 관심을 받았다. 15년 이상 된 기존 아파트를 3개 층까지 올려 지을 수 있는 이른바 ‘수직증축 리모델링’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기존 가구 수 대비 15%까지 늘어난 아파트를 일반분양할 수 있어 수익성도 나아졌다.
정부도 수직증축 허용 등 각종 리모델링 규제를 완화하면서 힘을 보탰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100년 장(長)수명 아파트’ 계획이다.
말 그대로 100년 동안 허물지 않고 2번 리모델링을 통해 살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정부의 100년 장수명 아파트 도입 배경은 입주민 간 분쟁 축소와 함께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여보자는 취지다.
영국 77년, 미국 55년에 비해 우리나라는 27년으로 선진국들의 아파트 평균 수명보다 절반도 안된다.
1990년 22.7%에 머물던 아파트 비율이 2010년에는 58%까지 치솟자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프로젝트다.
‘장수명 인증제’도 함께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가 오래 쓸 수 있는 집의 세부적인 설계 기준을 마련해 신축 주택에 4개의 등급을 매기는 제도다.
정부는 100년 아파트가 초기 건축비는 많이 들어가지만, 매년 22조원을 아낄 수 있다는 분석과 함께 건설업체와 주민에게 용적률 완화와 세제 혜택을 주는 지원책을 검토하겠다며 리모델링 사업을 적극 권장했다.
시장 반응도 좋았다.
지난 8월 첫 리모델링 사업지인 개포동 A아파트 시공사 입찰에 10개 건설사가 참여할 정도였다.
잘 나갈 것만 같던 리모델링 사업은 불과 4개월여 만에 위기에 놓였다.
국토교통부가 재건축 연한을 10년 앞당기는 9·1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국토교통부가 전향적인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을 발표하고 올 4월부터 법안이 시행된 지 불과 120여일 만이다.
연한과 안전진단 기준 완화 등 재건축의 문턱이 대폭 낮아진 탓에 당장 A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해야 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7년만 기다리면 재건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남 등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는 단지에서 기다렸다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런 고민은 90년대 초 지어진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단지들의 공통된 사항이다.
100년 장수명 아파트 사업 구상 역시 1년여 만에 크게 뒷걸음질 쳤다.
정부는 2015년부터 50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짓는 단지에 대해 ‘장수명 인증제’를 도입, 의무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지난 7월 1000가구 이상으로 크게 후퇴했다. 사업승인 대상 공동주택도 70만가구에서 34만가구로 절반 이상 축소됐다.
규제개혁위원회가 관련 규정을 심사하면서 ‘과도한 규제’라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건축비와 등급 인증 비용 등이 늘어날 수 있고, 심사 대상도 너무 많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제도 시행 3년 뒤 규제의 적절성 등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처럼 리모델링 대책 하나를 두고서도 곳곳에서 엇박자를 내는 정부를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국민은 혼란스럽다. 과도한 규제는 풀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100년 아파트를 짓는 사업에 적절한 규제가 없다면 목적 달성 역시 불가능하다. 리모델링과 재건축,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두 사업을 아우를 수 있는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