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는 지난해 거래된 상품 규모가 2500억 달러(약 259조원)로 아마존의 2배, 이베이의 3배에 달하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경쟁업체를 압도하고 있다. 아마존이 적자에서 허덕이지만 알리바바는 지난해 75억 달러 매출에 35억 달러의 순이익을 거뒀다.
영어강사 출신인 마 회장이 지난 1999년 항저우의 자신의 아파트에서 B2B(기업 대 기업) 사이트인 알리바바를 설립했을 때 누구도 회사가 이처럼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따르면 마 회장은 알리바바의 성공적 뉴욕증시 기업공개(IPO)로 재산이 265억 달러로 늘어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에 이어 아시아 2대 갑부 자리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그도 성공하기까지 숱한 실패와 시련을 거쳐야 했다. 수학을 못해 대학 입학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진 끝에 간신히 항저우사범대에 입학했다. 월 12달러의 박봉을 받으며 대학강사로 연명하던 마 회장은 능통한 영어실력을 통해 인터넷에 눈을 뜨게 됐다. 영어 원서를 번역하고 미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오고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그는 1995년 미국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판 ‘옐로페이지’인 차이나페이지스를 설립했다. 이는 중국 최초 인터넷 기업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아직 중국의 인터넷 인프라가 충분하지 못해 첫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마 회장은 “처음으로 사이트를 개설해 인터넷과 연결했을 때 우리는 첫 페이지의 절반을 열기까지 무려 3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며 “그러나 나는 인터넷이 중국에도 있다는 점을 입증했기 때문에 자랑스러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2003년 이베이가 이치네트를 1억5000만 달러에 인수하는 등 중국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을 때 알리바바로선 위기였다. 알리바바가 갓 타오바오를 설립했을 당시였기 때문에 이베이는 중국 C2C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이베이는 중국 주요 포털과 광고 독점계약을 맺으며 알리바바를 압박했다. 그러나 마 회장은 타오바오몰 수수료를 없애고 판매자들에게 무료 광고를 허용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빠르게 이베이로부터 시장을 뺏어갔다. 결국 이베이는 2006년 중국 소비자 대상 웹사이트 문을 닫으며 사실상 알리바바에 항복을 선언했다.
회사는 알리바바닷컴, 타오바오, T몰 등 세 개의 주춧돌과 알리페이 등 부가 서비스의 시너지에 힘입어 지난 2007년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점유율 80%를 달성한 이후 지금까지 1위를 지키고 있다.
마 회장의 설득력도 성공비결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알리바바 창업 후 6개월 만에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500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또 그는 알리바바 설립 전 잠시 중국 정부기관 관광가이드를 하던 중 만리장성을 방문한 제리 양 야후 설립자의 통역을 맡으면서 그를 매료시켰다. 이후 제리 양의 소개로 지난 2000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6분 만에 20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