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삼성전자,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족위),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등 3자가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9차 대화가 열렸다.
이들의 대화는 통상 5~6시간 동안 마라톤 협상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날은 오후 2시께 닫힌 교섭장 문이 2시간여 만에 열렸다. 다소 일찍 로비에 모습을 드러낸 반올림 측 인사들을 목격했을 때, 극적인 합의에 대한 기대감이 일었다. 여기엔 최근 몇 차례의 대화가 어느정도 진전을 보인 점도 작용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올림 측의 협상 거부로 인한 대화 종결. 반올림 측은 삼성전자와 가족위가 구성하기로 합의한 조정위원회의 '중립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협상장을 박차고 나왔다.
반올림 측은 “삼성전자가 계속 말을 바꾸면서 사과와 보상 및 재발방지책 등에 대한 논의가 아닌, 합의하지 않은 조정위 구성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면서 “조정위 구성에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반대 의견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올림이 중립성 문제를 제기한 것은 조정위가 삼성전자의 의도대로 협상을 중재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 및 가족들로 구성된 가족위의 생각은 다르다. 가족위 측은 “반올림이 (우리와) 의견이 다르다고 무조건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반올림이 언제든지 협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9차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반올림 측이 돌발 행동을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반올림은 지난 8월 삼성전자가 대화의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협상테이블이 아닌 서초사옥 앞에서 피켓시위와 기습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삼성전자와 반올림 측 협상단에 속해있던 피해자 및 가족 8명 중 5명이 보상 논의를 우선 진행, 필요하면 실무협의를 갖기로 하는 등 대화가 크게 진척됐다. 기자회견은 남은 피해자 가족 3명과 반올림 활동가가 주도했다.
현재 반올림은 둘로 쪼개진 상태다. 최근엔 피해자 가족 1명이 가족위와 의견을 같이하면서 반올림에는 2명의 피해자 가족이 남았다.
업계는 이처럼 대표성을 상실한 반올림이 보인 돌발 행동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대화의 이해당사자는 직업병 피해자와 가족일 것"이라며 "협상 테이블에서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화를 이어나가 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