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년 전, 반미주의자였던 선배 한 분이 느닷없이 미국을 보아야겠다며 비자를 신청했다. 한번 여행을 마치고 온 뒤로는 거의 매년 정기적으로 미국을 다녀왔다. 듣기로는 자동차로 몇 달씩 걸리는 미국 전역을 여행하고 다닌다고 했다. 내가 선배에게 “미국이 어떻더냐”고 물었던 건 이미 몇 차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였다. 도대체 미국에서 무얼 보았기에
벼리학교라는 흥미로운 이름을 가진 초등학교가 있다. 안양YMCA에서 운영하는 초등 대안학교다. 중고등 과정의 대안학교가 있다는 얘기는 전에도 더러 들은 적이 있고, 그중 몇몇 학교들의 이름은 여러 차례 들어서 익숙한 편이지만 초등 대안학교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엔 흥미로웠지만 그저 남의 일 정도로 치부했던 것 같다.
도무지 손이 가지 않는 정당과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후보자가 나란히 경쟁하고 제3의 후보자마저 없는 상황이라면, 이럴 때는 도대체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가.
투표 한 번 하기가 만만치 않다. 역대 선거치고 이번처럼 어려움을 겪어 보기도 처음이다. 3년 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한 뒤 처음 치르는 선거여서 기초선거의 경우 우선 후보자들의 면면을
엊그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안산 올림픽 기념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저녁, 온종일 비가 내려 질펀한 길 위로 표정 없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이 없었다.
장내에서도 장외에서도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터져나오는 울음마저 속으로 삼켜야 했던 침울한 분위기는 돌아
# 1. 아시다시피 미국 작가 댄 헐리는 거리의 소설가다. 그는 어느 날 낡은 타자기 한 대와 접는 의자를 들고 뉴욕 맨해튼으로 나갔다. 모퉁이에 자리 잡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생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소재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완성하는 데는 단 1분 정도가 걸렸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의 손을 거쳐 60초
내가 어려서 말썽을 피우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저걸 뭐에 써먹누” 하시며 혀를 끌끌 차곤 하셨다.
말썽쟁이였던 동생에게는 더 자주 하셨다. 비단 어머니뿐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도 그랬다.
젊은 사람들이 싸움을 하거나 서리를 하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뭐가 되려고 그러누” 하시거나 “뭐에 써먹누”라는 말로 나무라곤 하셨다. 성장해 가면서 한때 “저걸 뭐에
동네마다 출판기념회가 한창이다. 여느 출판기념회와는 사뭇 풍경이 다르다.
저자와 독자가 도란도란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질문하고 답하는 북 콘서트를 연상하면 오산이다. 장소부터 다르다. 서점이나 도서관의 한 공간이 아니라 호화스러운 웨딩홀이거나 심지어 수천 명을 수용하는 체육관에서도 한다. 축사도 길고 저자의 인사말도 웅변조에 가깝다. 대개는 북적
교수가 되겠다며 공부에 매진했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가 얼마 전 공부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로 하여금 오랫동안 매달려 왔던 공부를 포기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자괴감이었다. 그의 담담한 술회를 듣다 보니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기 위한 여정에는 공부의 고단함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마치 종처럼, 하인처럼 살아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공부 말고도
가고 오는 해의 끄트머리에서 내가 떠올렸던 장면은 썩 유쾌하지 못한 기억으로부터 왔다. 2014년 새해의 삶을 그 기억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해 보려 한다.
우연한 기회에 초중고교생들이 환경문제를 주제로 썼던 원고들을 읽어보게 됐다. 인쇄를 기다리던 원고들을 검토해 달라는 기획사의 부탁을 받아 생긴 기회였다. 원고는 한 공공기관에서 주최한 백일장에
한때 유별나게 몸값을 따지던 사람이 가까이에 있었다. 입만 열면 몸값을 운운했다. 그런 대화가 싫어서 그 사람을 멀리했다. 요즘은 단지 몇 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의 가치는 종종 값으로 둔갑한다. 오로지 쓸모로만 사람을 평가하려는 세태는 이제 너무나도 당연시된다. 능력 있는 사람들,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지난봄에 시작해서 뜨거웠던 여름을 거쳐 장장 8개월 동안 장애인복지관에서 생애사 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주, 우리는 중도장애인과 장애인 어머니들이 써낸 글을 묶어 ‘뜻밖의 여정’이란 이름으로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책이 도착하던 날, 복지관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왜 아니 그랬으랴. 책이 나오기까지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울기도 많이 울
“나는 160cm의 단신이지만 힘은 장사였다. 팔씨름은 누구에게도 져본 일이 없었고 허벅지 다리둘레가 60cm를 넘었다. 80kg 쌀가마를 혼자 어깨에 둘러메고 4층 계단을 쉬지 않고 올라 다녔다. 그랬던 사람이 한동안 무력하게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다. 마비된 다리는 뼈와 가죽만 남았다. 그러다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근육과 운동신경에 실낱 같은 희
다석 유영모 선생은 우리말에 대한 생각이 깊었던 분이다. 생전에 이 분이 만들어 즐겨 사용했던 말 중에 ‘끄트머리’란 단어가 있다. 끝과 머리가 합해진 말이다. 말 그대로 끝은 동시에 시작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최근 부쩍 관심이 높아진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논의를 보면서 불현듯 떠오른 말이 끄트머리다.
마틴 노이라이터(Martin Neureiter
지난여름, 경기도 안양시에선 작지만 특별한 체험행사가 열렸다. 방과 후 돌봄학습지원시설인 달팽이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이 자전거 여행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초등학생이 주축이 된 50여명은 경기도 안양시청을 출발해 강화도, 난지도를 돌아 다시 안양으로 오는 180Km 구간을 2박3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하지만 ‘끈기’만을 강조하는 여느 자전거
올 여름 참 많이 더웠다. 마지막 가는 더위에 몸을 달궈보기로 했다.
9일 아침, 달팽이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다. 나도 따라나설 참이다. 안양시청에서 출발해 강화로, 강화에서 다시 난지도를 거쳐 안양시청으로 돌아오는 2박3일 코스다. 70여명이 함께 출발한다. 어지간히 자전거를 타 보신 분들은 별거 아니다 할 수 있을 테지만 나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