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직도 가끔은 심장이 27~8년 전 그 시절에 가 멎는다. 요즘은 특히 그렇다. 당시로 치면 나는 지금 28사단 사건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 병장보다도 세 살이나 나이가 많았다. 전방에 근무하면서 나도 수시로 얻어맞았다. 따귀도 맞고, 엉덩이도 맞았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남들은 듣지 않아도 되는 무수한 언어폭력에 시달렸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자대에 배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행정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다행히 좋은 지휘관을 만났던 건 행운이었다. 당시 가까이에서 보았던 지휘관은 병영의 민주화를 지지하고, 민주화된 군대가 훨씬 강한 군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그가 더 이상 군에 있지 못하고 예편했을 때 얼핏 스쳐갔던 대한민국 군대의 암울한 예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돌이켜 보니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군대는 여전히 군대일 뿐이었다. 군에서 경험하고 내면화한 폭력과 가부장적 사고는 앞으로도 여전히 우리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군에서는 민주주의, 인권 같은 개념이 아직도 요원한 일인가 보다.
#3. 여의도는 그렇다고 치자, 지방의회는 어떤가. 선거를 치르고 두 달이 넘도록 개원조차 하지 못한 지방의회가 여럿이란다. 견해 차이가 크면 얼마나 크고, 지켜야 할 이익이 있으면 얼마나 있을지 감히 짐작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먼저 부끄러움을 좀 알았으면 싶을 때가 있다. 노조나 시민단체, 당연히 있어야 할 민주주의가 그곳에는 있는가. 제도, 절차를 넘어 가치를 내면화한 습속의 민주주의 말이다. 공익 앞에서 자신의 이해타산쯤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품위,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려 조금만 더 너그러울 수 있는 절도와 기풍이 서린 그런 민주주의, 대학에는 있는가. 종교에는, 정작 그곳에는 있던가.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엊그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나는 한줄기 빛을 보았다. 진실 앞에서 매번 무기력하기만 했던 민주주의의 실체를 꿰뚫는 사람들을 보았다. 순천, 곡성지역에서는 26년 지역주의의 아성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시민들은 전략공천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정당의 비민주적 관행에 철퇴를 내렸다. 당원을 들러리로 세우고 치른 당내 선거, 당 지도부의 술수와 꼼수에 과감히 반기를 들었다. 그것은 지역을 볼모로 하는 정당 운영 방식에 대한 분명한 거부였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와 과정에 대한 정당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도로만 존재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일상에서 실천하는 강력하고도 힘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과 시대의 요청인 것이다. 바야흐로 힘 있는 민주주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