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장 승진을 앞둔 경제부처의 A과장은 최근 꽃보직을 마다하고 대신 모두 기피하는 ‘좌천성’ 보직을 택했다. 부처 내에서 능력 있는 인재로 꼽히는 그의 선택에 주변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하지만 A과장은 나름 생각이 있었다. 2년 후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고자 업무관련성이 없는 보직을 선택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꽃보직을 맡고 승진할수록 퇴직 시기가 빨라지게 되는 만큼 관피아 방지법을 피해 일찌감치 살길을 찾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 방지법’으로 알려진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시행이 한달반 여 앞으로 다가왔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강화된 공직자윤리법이 오는 3월 31일부터 발효되면 재취업 제한 기한이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나고 취업제한 범위도 ‘소속 업무’에서 ‘소속기관 업무’로 확대된다. 취업제한 대상 민간기업 수도 4000여곳에서 1만3500여곳 이상으로 대폭 늘어난다. 공직자들의 퇴임 후 재취업 길은 사실상 막히게 되는 것이다.
이미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의 적폐가 수술대에 오르면서 주요 부처의 1급 이상 퇴임 고위공무원들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자리에서 물러난 장·차관을 비롯한 실장급 등 고위관료 30명을 대상으로 퇴임 후 거취를 조사해보니, 관피아 논란을 피해 대학으로 가거나 거취를 정하지 않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교수나 총장, 부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관료들은 조사대상 30명 중 10명으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거취가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9명으로 상당수였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부처의 산하 또는 유관기관으로 이동한 이들은 국무조정실 전 실장급 3명을 포함한 5명에 그쳤다. 때문에 관피아 난관을 뚫고 김재홍 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코트라 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퇴임 후 공직에 남아있는 경우는 더 적어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등 3명에 불과했다.
다음달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되면 고위 관료들의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지게 된다. 산하 공공기관은 물론, 공직 유관단체, 매출 100억원 이상의 민간기업으로의 취업이 제한되는 만큼 사실상 ‘백수’인 고위전관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공무원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고 능력 있는 관료들의 업무 노하우와 전문성이 사장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또 현직의 유능한 공무원들이 승진을 기피하고 민간으로 이동하는 등 공직사회의 인재유출이 가속화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기도 한다. 관피아 방지법이 수십년 답습돼 온 관피아와 낙하산 구태를 타파하고자 불가피한 조치라지만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산하 공공기관들도 관피아 방지법으로 전문성과 경험이 없는 정치인이나 교수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올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관피아 낙하산 논란에 적잖은 공공기관들의 기관장 인선이 늦어지고 있다”면서 “관피아가 떠난 자리에 경영자로서 검증이 안된‘정피아(정치인+마피아)’나 ‘교피아(교수+마피아)’가 득세하게 되면 더 큰 잡음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