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이달 2일을 기준으로 국내 상호출자ㆍ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이하 대규모기업집단)은 63개다. 지난해 지주사 형태의 대규모기업집단은 31개로 2013년 대비 1개가 줄었다. 그러나 최근 삼성, 롯데, 현대차 등 업계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전환에 박차를 가하면서 다른 대기업도 이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그룹은 지난 1년간 이재용 부회장 등 3세들의 경영 승계를 위해 지배구조 재편 작업에 속도를 내왔다.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하는 출자구조에서 계열사들의 정리와 함께 지주사 전환도 검토 중이다.
2013년 30개가 넘던 삼성 계열사 사이의 순환출자고리는 지난해 금융, 전자, 산업재 중심으로 재정비되면서 10개로 줄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SDS와 제일모직이 상장되고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 등 4개 계열사가 매각됐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승계가 마무리돼야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재편 양상이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역시 오너 일가 지분 방어와 3세 승계를 위한 지주회사 전환이 진행중이다. 현재 현대차 순환출자 구조 중 현대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 줄기는 그룹 승계구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이 계열사들이 현재 지배구조 근간을 이루는 주력 회사들이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지분 5.17%, 현대모비스 지분 6.96%, 현대제철 11.84%를 보유하며 그룹 전체에 지배력을 뻗치고 있다.
지난 1월 한 차례 무산 이후 2월에 재추진된 현대글로비스 매각작업도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고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의선 부회장은 지난해 이노션 지분매각과 올해 현대글로비스 블록딜을 통해 7000억~8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보유 지분이 높지 않기 때문에 오너가의 지분율을 최대한 확대할 수 있는 지주사로 전환한 후 승계 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한솔그룹도 2013년에 실패했던 지주회사 전환을 재추진했다. 한솔제지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해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는 방식이다. 그러나 여전히 로지스틱스→한솔홀딩스→라이팅→EME→로지스틱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고 일부 자회사 경우 지분 확보 요건도 갖춰야 하는 등 완전한 지배구조 재편을 위한 과제가 남아있다.
국내에서 가장 빨리 지주회사 체계를 갖췄던 LG는 상장 계열사 중 유일하게 지배를 받지 않던 LG상사를 통해 범한판토스를 인수하면서 지배구조 변화를 노렸다. 증권가에서는 인수 과정에서 대주주 자금이 투입된 것으로 보아 후계자인 구광모 상무가 LG상사에 지배력을 뻗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밖에도 롯데그룹이 국내에서 가장 복잡한 417개의 순환출자 구조 정리와 후계구도 재편을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의 지주사 전환 목적, 과정,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무조건 순환출자 구조와 지주회사 체제의 옳고 그름을 따져서는 안된다. 삼성의 경우 상장 과정에서 경영진 뿐 아니라 기존 주주들의 이익도 창출됐고 비주력 사업 매각을 통해 삼성 전체의 사업구조를 간결하게 만드는 등 이점이 있었다”라며 “승계가 주목적인 지배구조 개선이더라도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경영이 될 경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