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인 가족극을 선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KBS 2TV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 제작발표회에서 유현기 PD가 한 말이다. 이는 방송으로 증명됐다. 김혜자, 채시라, 도지원, 이하나 등이 연기하는 극중 인물들은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란 이름에 걸맞게 개연성을 가졌다. 더욱이, 유쾌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대사들로 카타르시스를 자아낸다. ‘안국동 강선생네’ 가족으로 얽혔지만, 개성은 각기 살아 움직인다.
이처럼 한지붕 아래 사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국내 드라마에서 넘쳐난다. 연일 화제를 낳는 ‘압구정 백야’부터 최근 종영한 ‘전설의 마녀’, ‘가족끼리 왜 이래’까지 일일극, 주말극 등 다양하게 포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들은 현실과 거리가 먼 에피소드와 갈등 상황으로 입방아에 오르기 일쑤다. 공감은커녕 자극의 세기만 높여가는 인물 관계로 시청률 잡기에 열 올린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가족드라마의 성패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보다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공감의 궤는 현실과 동떨어진 메시지 탓에 찾아보기 힘들다. 극 중 과도한 설정이 눈살을 찌푸릴 뿐이다.
최근에는 전통적 개념의 가족 해체이자, 상실의 시대가 도래했다. 싱글맘, 싱글대디, 독거노인, 기러기 아빠, 이혼 가정 등이 흔하다. 그런데 이는 가족 드라마 안에서 여전히 소품을 활용된다. 결혼은 마치 드라마의 끝인 양 그려지는 설정도 실정에 맞지 않는 가족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한몫한다.
수십년 간 거듭해온 국내 가족극은 진부함으로 점철돼 기발함을 바라기 어렵다. 앞서 ‘착하지 않은 여자들’ 유현기 PD는 디테일을 살리고, 색채감이 풍부한 가족극을 선보이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기존의 연속극에서 보여주지 못 했던 이야기들을 펼칠 것’이라면서 말이다. 이렇듯 국내 방송가가 연속극 또는 월화, 수목, 주말 편성 시스템을 고수한 결과도 이 같은 안일한 폐해를 낳은 원인이다.
물론, 기존의 드라마가 구현해온, 아니 재현해온 작품 세계만으로 시청률을 올릴 수 있고, 광고를 따라붙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창작을 기한다는 것은 제작진의 자존심이고, 이를 원하는 건 시청자의 권리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로 공동 창작진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해 성공시킨 신원호 PD는 올 하반기 차기작 ‘응답하라 1988’을 통해 가족극을 펼치겠단다. MBC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1986~1994)을 모티브로 하겠다는 그의 바람은 안팎으로 또 다른 인기 드라마 탄생에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는 상황이다. 가족극을 표방한만큼, 한발 더 나아간 신선한 가족 콘텐츠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근시안적인 흥행 여부보다 국내 가족드라마의 환골탈태가 더욱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