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지원비 0원 경남뿐!!’ 무상급식 중단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여한 어린 초등학생의 등 뒤에 있는 피켓 문구다. 초등학생들이 길거리로 나왔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4월부터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하며 촉발된 안타까운 풍경이다. 여야 정치세력 간, 보수와 진보 진영 간, 빈부 계층 간 갈등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경남지역에선 이제 무상급식은 사라지게 됐다. 대신 학비 지원을 받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는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지원해 줄 테니 가난을 입증해봐’ 식의 왕따 급식, 차별 급식, 낙인효과를 지적하며 무상급식 중단 철회를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TV 화면으로 눈이 간다.
TV에는 가난한 독거노인, 빈곤한 사람들, 생계 위협의 장애인과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 적지 않다. 이들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고 병 치료를 한다. 일자리를 얻고 주거시설도 확보하는 경우도 있다.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한 가족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럼 좋은 거지”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방송 등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재현(representation)하는 가난한 노인과 이주 노동자, 장애인,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미지와 내러티브, 그리고 신화의 현주소는 문제투성이다. 미디어에서 펼쳐내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배적 서사와 이미지는 편견을 심화시키고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가난의 비참함을 더 드러내거나 눈물을 더 흘려, 그럼 도와 줄 테니’라는 식의 시선이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미디어의 이미지와 서사에 짙게 깔렸다. 미디어는 가난한 이들을 부정적 성격으로, 열등한 모습으로, 연민적 시선으로 묘사해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감을 무력화시키고 동정받아야 할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구 미디어가 동양 및 중동 문화에 이국적·야만적 특성을 부여해 동양인과 동양문화를 타자로 규정할 뿐만 아니라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우리 미디어 역시 가난한 사람, 장애인, 다문화 가정에 대해 중산층, 비장애인, 한국인 가정의 묘사와 달리 표가 나는 이미지와 서사를 드러낸다. 이 때문에 빈자(貧者)와 다문화 가정,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는 타자화 혹은 대상화하고 더 나아가 비정상으로 낙인찍히는 부정적 결과를 낳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규찬 교수가 ‘미디어 문화와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라는 논문에서 적시했듯 힘없는 타자, 그래서 더 많은 고통을 겪는 타인에게 목소리를 되돌려주는 것은 미디어의 매우 중요한 의무이며 사회적으로 취약한 집단, 사회적 약자에게 다가가 이들 의사와 욕망, 정체와 대면하고, 이를 이야기로 풀어내며 사회적 관심사로 드러내는 것은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공적 책무다.
하지만 미디어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 존중하기보다는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등 문제 있는 이미지와 서사를 반복 재현해 편견으로 이들을 바라보게 하고 있다.
“가난을 입증한 뒤 지원받아 학교 급식을 먹으며 왕따를 당하느니 차라리 굶겠다”는 경남 지역 한 학생의 말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와 미디어의 문제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미디어와 우리 사회는 귀 기울여야 한다. “충북에서는 ‘무상급식’이라는 용어를 도지사부터 교육관계자까지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다. 급식은 의무교육의 하나를 차지하는 교육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급식은 우리 식생활 문화와 식품 안전, 환경 등의 귀중한 가치를 배우는 교육의 본령이다.”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충북 지역에 산다는 주민 김 모씨의 ‘왕따 급식, 차별급식으로 얼마나…’라는 글의 일부다.
‘가난한 취약계층’ ‘생계위협 장애인’ ‘다문화 가정’ ‘탈북자’ ‘이주노동자’…. 이 용어들을 마주하며 당신은 어떤 것이 먼저 연상되는가? 그 떠오르는 모습에 편견이나 차별적 시선은 담겨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