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진(晉)의 영공(靈公)은 폭군이었다. 대부(大夫) 조순(趙盾)이 자주 간하자 귀찮게 여긴 영공은 자객을 보내 그를 죽이라고 했다. 그러나 조순의 집에 잠입한 자객은 그의 인품에 반해 괴로워하다가 나무에 머리를 찧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공이 조순을 술자리로 유인해 죽이려 했을 때에도 병사들이 미리 알고 달아나게 했다. 조순은 국경을 넘으려는 순간 영공이 살해당했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왔다. 그런데 역사 기술을 담당한 태사(太史) 동호(董狐)가 ‘조순, 군주를 시해하다’라고 썼다. 조순이 항의하자 동호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직접 시해하지는 않았지만 대감은 대부로 국내에 있었고, 조정에 돌아와 범인을 처벌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감이 시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조순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이로부터 동호는 사관의 대명사가 됐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동호는 옛날의 훌륭한 사관이다. 법에 따라 굽힘없이 썼다. 조순은 옛날의 훌륭한 대부다. 법을 위해 부끄러운 이름을 뒤집어썼다. 아깝도다. 국경을 넘었더라면 악명을 면했을 텐데”[孔子曰 董狐古之良史也 書法不隱 趙宣子古之良大夫也 爲法受惡 惜也 越境乃免] 동호직필은 이처럼 권세에 아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을 가리킨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BC 607년)조에 나온 이야기다. 줄여서 직필이라고도 한다.
4월 7일은 신문의 날. 올해 제59회 신문의 날 표어로는 ‘정보가 넘칠수록 신문은 더욱 돋보입니다’가 선정됐다. 지난해 8월 기자협회 50년 행사 때 서예가 하석 박원규씨는 ‘正言守中 直筆爲公’(정언수중 직필위공), 바른 말로 중심을 지키고 곧은 글로 공익을 위하라는 휘호를 주었다. 정직하고 깊이 있는 언론을 지향해야 한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