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12일 자원외교비리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다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 제공 의혹에 대해 정식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명박(MB)정부를 겨냥한 사정 칼날이 현 정부에 부메랑으로 돌아옴에 따라 성완종 리스트는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국정운영의 동력을 모색하던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겐 대형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노사정 대타협 실패에 공무원연금개혁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우선 국정과제인 경제활성화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우려가 나온다.
일단 자원외교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남긴 메모를 통해 허태열ㆍ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인사들에게 거액의 자금을 건냈다고 폭로하면서 청와대는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현재 한국경제는 저성장과 디플레 공포에 시름시름 앓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9일 ‘2015년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3.4%에서 3.1%로 0.3%포인트나 내려잡았다.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엔진인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유가 하락과 글로벌 경기 침체 등으로 올해 1분기 수출액은 작년 동기보다 2.8%, 수입액은 15.2%나 감소했다. 한은은 올해 수출규모(통관기준)가 작년보다 1.9% 줄어 3년만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은 상황이다.
박근혜정부는 올해 집권 3년차를 맞아 최우선 국정과제인 ‘경제살리기’에 올인하고 있지만 지난해 세월호 참사, 정윤회 비선실세 문건 파동에 이어 ‘성완종 리스트’ 파문까지 불거지면서 이 같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걱정이 흘러나오고 있다.
또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지지부진한 노동시장 구조개혁, 공무원연금개혁 등 핵심 개혁과제마저 ‘성완종 리스트 블랙홀’에 발목잡혀 좌초하는 게 아닌지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지난 3월 제2의 중동붐에 이어 오는 16일부터 9박12일 간의 중남미 순방을 통해 해외발(發) 경제붐을 이어나간다는 박 대통령의 구상에도 차질이 빚어질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여당도 성완종 파문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오는 13일부터 나흘간 이어지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이 ‘당대포’ 정청래 의원을 전진배치하며 친박계에 십자포화를 퍼붓겠다고 벼르고 있어 ‘성완종 리스트’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각종 현안과 입법 과제가 산적한 4월 임시국회도 성완종 파문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어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살포 메모 사건과 관련해 “이번 사건이 국정의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며 “공무원연금개혁 등 4대 개혁의 성공과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 등 산적한 현안이 너무 많다”고 강조한 데는 이 같은 위기의식이 깔려있다.
상황에 이끌려 가기보다는 집권여당으로서 선제적으로 대응해 4월 임시국회의 공무원연금 개혁, 민생ㆍ경제살리기 법안 처리 등 국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성 전 회장의 사망에 따른 검찰 수사 확대로 공기업의 해외자원개발 ‘구조조정’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초 검찰은 자원개발사업에 집중 투자한 경남기업의 횡령ㆍ분식회계 혐의로 한국석유공사ㆍ광물자원공사 등 자원비리 의혹의 중심에 있는 에너지 공기업들의 비리 혐의로 수사망을 좁힐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성 전 회장의 사망으로 에너지 공기업에 대한 향후 검찰 수사 방향이 달라지게 됨에 따라 기능 조정 방식이나 시점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자원비리 관련 검찰 수사가 정리되는 상황을 감안해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해 에너지 공기업의 기능 조정 문제를 마무리 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