볍씨를 담글 때는 부정한 일을 했거나 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솔가지로 덮었다. 곡우 날 사시(巳時, 오전 9~11시)에 담그면 볍씨가 떠내려간다고 그 시간을 피했다. 볍씨를 담근 뒤 항아리에 금줄을 쳐놓고 고사를 올리는 곳도 있었다. 나중에 개구리나 새가 모판을 망치지 않게 해 달라는 취지다. 충남 보령 등 일부 지역에서는 곡우낙종(穀雨落種)이라 하여 이때 볍씨를 논에 뿌렸다고 한다. 낙종은 기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지만.
곡우 철은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른 시기여서 자작나무 박달나무 산다래나무 등에 상처를 내고 그 수액을 받아먹기도 했다. 지리산에서는 통일신라 때부터 곡우에 약수 제사를 지냈다. 거자수라고 부르는 곡우 물은 위장병 신경통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거자는 ‘거제수+자작나무’ 아닌가 싶다.
이 무렵에 부는 바람을 연화풍(楝花風)이라고 한다. 다산 정약용의 시 ‘농가의 늦은 봄’[田家晩春]에 “비 갠 방죽에 서늘한 기운 돌고/연화풍 불어와 해도 점점 길어진다”[雨歇陂池勒小涼 楝花風定日初長]는 대목이 있다. 연화풍은 마지막 화신풍(花信風)이다. 이를 고비로 봄은 가고 여름이 온다. ‘동고잡록’(東皐雜錄)에 “화신풍은 매화풍(梅花風)이 가장 먼저이고 연화풍이 마지막이다”라고 돼 있다 한다.
추사의 편지[與張兵使]에서도 연화풍을 읽을 수 있다. “인편이 돌아와 보내주신 답서를 받으니 자리를 마주하고 반갑게 웃는 것 같아서 머나먼 백리 길도 지척에 있음을 느끼외다. 다시 묻노니 연화바람[楝花風]에 영감의 정후(政候) 날로 편안하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