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貨殖具案(화식구안)] 비트코인의 재조명

입력 2015-05-29 10:53 수정 2015-06-2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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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형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홍콩을 여행하다 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화폐의 종류가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라는 점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화폐의 도안이 각각 다른데, 화폐가 ‘HSBC 은행’ ‘SC 은행’ 그리고 ‘중국은행’에서 발행되는 세 종류가 유통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사실, 즉 ‘화폐의 발행은 국가가 하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어찌되었거나 홍콩은 이처럼 3종류의, 그것도 민간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가지고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바로 화폐의 본질이 바로 ‘신용’, 즉 ‘믿음’이라는 것이다. 즉, 화폐를 사용하는 개개인이 그 화폐를 화폐로 받아들이기까지가 쉽지 않은 것이지,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그것이 ‘종이’이든 아니든, 그리고 그것이 중앙은행에서 발행되었든, 아니든 상관없이 경제는 굴러가는 것이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자. 화폐의 발행 권한이 국가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왜냐하면 국가에 의한 화폐 남발, 그에 따른 폐해의 예는 고대 중국 및 로마, 고금을 막론하고 목격되는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화폐 발행을 왜 국가가 독점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어찌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란 인물이 그 주창자인데, 그는 1976년에 간행된 ‘화폐의 탈국유화(The Denationalization of Money)’란 책에서 화폐 발행의 자유화를 대담하게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랜 시점부터 국가가 통화 발행권을 독점해 왔는데, 거기에는 따지고 보면 아무런 합리적 근거도 없으며 오히려 여러 가지 문제점, 예컨대 화폐의 남발 같은 문제점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정부는 대부분 화폐 발행을 통해 재정 적자를 메우면서 활동을 확대해 왔다. 고용을 창출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는 만일 시중은행들이 독자적 화폐를 발행하면, 각 은행은 자사가 만든 화폐의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중히 발행량을 조절할 것이므로 무질서한 증발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러한 발상이 2000여년 전 고대 중국에서 이미 논쟁이 되었다면 여러분은 믿겠는가?

고대 중국 한(漢)나라 때 벌어진 중국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논쟁 중 하나인 ‘염철논쟁(鹽鐵論爭)’을 정리한 ‘염철론(鹽鐵論)’이란 흥미로운 책이 있다. 이 책은 당시 국가가 독점하던 소금 및 철의 국가 전매사업을 국가가 계속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민간에 이양하는 게 맞는지의 논쟁으로 촉발됐다. 결국 국정 전반에 걸쳐, 요즘으로 치자면 ‘자유시장경제’를 주창하는 학계와 이에 반해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주창하는 관료세력 간의 사활을 건 일대 거대한 논쟁으로 벌어진 사건을 기록한 책이다. 흥미롭게도 화폐 주조 권한에 관한 논쟁이 ‘착폐(錯弊: 화폐 주조)’ 부분에 나온다. 이 부분을 요약하자면, 정부가 화폐 주조를 독점하자 방대한 정부조직 특성상 오히려 감시감독 등이 효율적이지 못해서 화폐의 위조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반면, 민간 주조업자에게 맡기면 자신들의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감시감독하게 되므로 민간에게 자율로 맡기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주장이다. 어떠한가? 마치 2000여년 후 하이에크가 주장한 내용을 미리 얘기하는 듯하지 않은가?

최근 각광을 받는 새로운 전자화폐로 ‘비트코인(Bitcoin)’이 있다. 화폐란 결국 사람들이 사용해 본 결과 편리하기 때문에 ‘그 무언가’를 화폐로 믿고 사용하기 시작하면 화폐가 되는 것이며, 비트코인이 편리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면 그것은 바로 화폐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따라서 지금까지 우리가 가져온 생각, 즉 ‘화폐란 정부가 발행한 것이어야 한다’란 편견을 버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화폐가 많아지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정부의 실패’를 견제할 수단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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