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유지돼 온 ‘게임의 룰’이 변하는 만큼 주식시장이 겪을 변화도 상당할 전망이다. 한국거래소는 이번 가격제한폭 확대를 통해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을 확보하는 한편 상한가 굳히기, 상한가 따라잡기 등 비이성적·불공정 투자행태를 근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만큼 상대적으로 정보력이 약한 개인투자자들이 더 큰 손실을 입게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투자자보호 < 시장효율성… 증시에 긍정적 역할 기대 = 가격제한폭 제도는 개별주식 종목의 상한가와 하한가를 지정해 주가의 변동성을 제한하는 일종의 규제장치다. 주가급변 요인이 발생했을 때 시장의 과민 반응을 억제하고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반면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만큼 시장의 효율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결국 가격제한폭을 움직이는 것은 ‘투자자 보호’와 ‘시장 효율성’ 중에서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이번 제도 개편의 경우 시장의 효율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독일, 유럽 등 선진국 증시 대부분이 가격제한폭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도 결국 가격제한폭 제한 조치를 완전히 폐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가격제한폭 확대 조치는 이를 위한 초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가격제한폭 확대가 국내 증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증권의 상하한가 도달 빈도 분석은 이 같은 전망에 힘을 보탠다. 2000년 이후 대·중·소형주 모두에서 상한가 도달 빈도가 하한가 도달 빈도를 앞선 것. 가격제한폭 확대 이후 주가하락 요인보다 주가상승 요인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상한가에 도달한 종목에 대해서는 투자자 상당수가 추가 상승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바탕으로 매수 행렬에 가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하한가 종목에 대해서는 바닥 통과에 대한 기대가 있어 추가 매도 수요를 억제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작선세력’ 발붙이기 어려워진다… 비이성적 투자행태↓ = ‘상한가 따라잡기’, ‘상한가 굳히기’, ‘하한가 풀기’. 한국에는 있지만 선진국 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투자 방식이다. 이 같은 비합리적인 투자 행태를 근절하거나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가격제한폭이 늘어남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또 다른 변화로 꼽힌다.
대표적으로 소위 ‘작전세력’의 주가조작이 어려워진다. 현재는 특정 세력이 어떤 종목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상한가를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상한가 근처까지만 가도 개미투자자들이 몰려들어 자동으로 상한가에 붙어버리는 이른바 ‘자석효과’ 때문이다.
이 같은 불공정행위가 비교적 용이하다 보니 시장에서는 ‘상한가 따라잡기’가 일종의 투자기법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기업가치와 무관하게 유동성이 적고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종목만 골라 매수하는 기법이다. 웃지 못 할 일이지만 현행 15% 가격제한폭 상황에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꽤나 짭짤한 수익률을 거두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위적으로 상한가를 만들어 다음날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 다음 주식을 팔아 차익을 남기는 ‘상한가 굳히기’나 악재가 발생한 종목 주식이 하한가를 기록할 때 확인되지 않은 호재성 사실을 퍼트려 보유 주식을 처분하는 이른바 ‘하한가 풀기’ 등의 기법도 현재의 낮은 가격제한폭 제도 하에서 가능한 투자방식이다.
그러나 가격제한폭이 30%까지 올라가면 이 같은 투자행태는 지속되기 어렵게 된다. 김원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본부장은 “작전세력이 상한가를 만들기 위해 훨씬 많은 자금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상한가 굳히기 등 시세조종이 어려워져 불공정 거래행위가 감소할 것”이라며 “기업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는 시장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박’도 ‘쪽박’도 빨라진다… 정보력 약한 개미는 무섭다 = 가격제한폭이 확대되면 하루 주가변동폭이 60%나 된다. 지금은 주가가 반토막이 나는 데 5거래일이 걸리지만 상·하한 30%의 변동폭에서는 2거래일이면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박이든 쪽박이든 현재보다 빨라진다는 것이다.
시장의 가격결정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점은 순기능이지만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만큼 비이성적 폭등·폭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가격제한폭 확대를 우려하는 쪽은 ‘두 배로 늘어난 수익 가능성’보다 ‘두 배로 늘어난 손실 가능성’에 주목한다. 내츄럴엔도텍과 같은 사례가 더 빠르고 강하게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외국인·기관에 비해 정보력이 약한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최근 내츄럴엔도텍 사태로 한 기업에 의해 지수 전체가 돌아서는 코스닥시장의 취약성을 본 개인투자자들이 단기적으로 증시를 이탈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코스닥시장 가격제한폭이 확대됐던 지난 2005년 3월의 경우 전·후 1개월간 거래량이 5% 감소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간접투자상품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류용석 현대증권 시장전략팀장은 “가격제한폭 확대는 숙련된 기관투자자에게는 그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개인투자자는 종목별 위험관리 측면에서 큰 부담을 느낄 수 있어 간접상품(펀드, 랩, ELS, ETF) 등에 대한 투자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