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마이라이프] "6ㆍ25참전용사 대우, 이게 뭡니까!"

입력 2015-06-25 09:19 수정 2015-06-2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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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유공자, '6‧25 영웅' 상징인 기장을 택배로 받아

▲6‧25 참전유공자. 신영식(80) 김성렬(83) 장인준(83) 이동진(83) (왼쪽부터). 양용비 기자 dragonfly@

차라리 악몽이었다면 꿈에서 깨기라도 했을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그 날은 꿈이 아니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중학생부터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면 모조리 사선을 넘나들어야했다. 떨리는 손으로 총을 잡았고, 밤하늘의 별 속에 가족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 후로 6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들이 피 흘려가며 지켜낸 그 땅에서 올림픽과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열렸다. 또한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이제는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그들이 일궈낸 토양에서 값진 결실을 수확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국가를 수호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제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영웅들은 자신들이 수호한 국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미소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영웅들의 모습이 밝아 보이지 만은 않았다. 서울 종로의 6ㆍ25전쟁유공자회에서 만난 그들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6‧25 참전유공자 신영식(80)씨. 양용비 기자 dragonfly@

◇ “영웅이라는 기장을 택배로 받았습니다. 이게 영웅을 대접하는 방법입니까?”

전국 약 18만 명, 서울시 3만540명. 6ㆍ25참전유공자의 수다.

2013년 11월 서울시를 포함해 전국 지자체에서는 이들에게 ‘호국영웅기장’을 수여했다. 서울시는 시의 3만540명의 참전유공자 중 참전유공자회 250명을 포함, 총 350명의 참전유공자를 시에 초청해 ‘호국영웅기장’을 수여했다. 전수식에 참여하지 못한 참전유공자들에겐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따로 전달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전수식에 참여하지 못한 참전유공자에게 ‘호국영웅기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겼다. 이들에게는 우체국 ‘택배’로 기장을 수여 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뿐만 아니다. 전국 지방지자체 또한 직접 수여하지 못한 참전유공자에게 일제히 택배로 기장을 배달했다. 기장을 택배로 받은 6ㆍ25 참전유공자회의 신영식(81)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국가에서 6ㆍ25참전용사를 기리는 방식입니까? 어떻게 영웅의 상징인 기장을 택배로 보낼 수 있어요. 이것은 영웅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영웅을 욕보이게 하는 겁니다. 서울시에서 많은 인원들을 수용 못한다면 구 단위에서라도 단체의 장이 직접 전달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서울시가 2013년 11월 21일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호국영웅기장’에 대해 이렇게 써 있다.

‘호국영웅기장은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6ㆍ25참전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처음으로 제작됐다.’

기장을 수여함으로써 6ㆍ25참전유공자에 대한 희생과 공헌을 기린다는 국가보훈처 취지는 뜻 깊다. 그러나 자리를 빛내지 못한 참전유공자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방식이 일부 참전유공자들의 공분을 산 것으로 보인다. 택배로 기장을 받은 신씨도 실망감이 큰 듯, 기장에 대한 넋두리를 이어갔다.

“영웅이라는 호칭은 나라를 위해 애쓴 사람한테 쓰는 것이에요. 저는 이번에 6ㆍ25참전유공자에 대한 국가의 처세가 잘못된 것 같아요.”

수여식에 참여하지 못한 6ㆍ25 참전유공자에게 택배로 기장을 보낸 보훈처의 선택은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약 3만명이나 되는 인원을 모두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훈처에서 선택한 택배라는 방식은 많은 유공자들을 화나게 했다.

▲6‧25 참전유공자 장인준(83)씨. 양용비 기자 dragonfly@

◇“명예수당 18만원으로는 손자 과자 값도 안돼”

6ㆍ25참전유공자회에서 만난 참전유공자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국가를 위해 사선을 넘나든 사람들을 홀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20세 때 군대에 입대해 5년 동안 군생활을 하면서 6ㆍ25전쟁을 겪은 장인준(84)씨. 장씨도 불만을 털어놨다.

“사실 보훈정책만으로도 고맙긴 해요. 그러나 항상 어떻게 보상을 해주겠다는 말만했지 실질적인 보상이 없어요. 물론 월 18만원이라는 명예수당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것 가지고는 손자들 과자 값도 안돼요. 저희는 건강해서 여기에 나오기라도 하지. 사실 보면 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이 더 수두룩하다니까.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기초 생활 정도만 될 수 있게 보상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장씨가 제안한 수당은 약 50만원이었다. 손에 잡히는 월급이나 수당 없이 사선을 넘었던 전쟁 당시를 생각해 보면 장씨가 제안한 액수는 그들에게 정당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6‧25 참전유공자 이동진(83)씨. 양용비 기자 dragonfly@

◇“6ㆍ25참전용사는 할인 혜택 해당이 안 됩니다.”

장인준 씨와 마찬가지로 20세에 입대해 5년간 군복무를 한 이동진(83)씨. 지난해 대구에서 6ㆍ25참전용사로서 자존심에 상처가 난 기억이 있다. 국가 유공자 할인이 된다고 들어간 음식점에서 6ㆍ25참전용사는 할인혜택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6ㆍ25참전유공자가 혜택이 안 된다면 누가 되냐고 물어봤더니, 4ㆍ19나 5ㆍ18 유공자가 해당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었나 생각해 본 순간이었습니다. 과연 6ㆍ25때 국가를 빼앗겼다면 4ㆍ19나 5ㆍ18이 있었을까요?”

실제로 6ㆍ25참전유공자들이 사회적으로 명예와 대우 그리고 자긍심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입장료나 교통수단 할인과 같은 기본적 혜택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이라도 할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버스, 열차, 공원에서도 아무 혜택이 없는데 이게 무슨 유공자에요? 지하철에서 6ㆍ25참전유공자입니다. 표 주세요라고 하면 어리둥절하게 직원이 쳐다봐요. 참 허무합니다.”

장인준 씨는 이 정도의 대우라면 후세대들이 국가를 위해 몸 바쳐 헌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을 보는 젊은 세대들의 시선에서도 존경심이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6ㆍ25참전유공자들은 국가를 수호한 결과가 허무하다고 하는 이유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보훈 가족들을 섬기겠다는 취지에서 만든 국가 보훈처. 국가 보훈처의 공식블로그 ‘훈터’에 게재돼 있는 글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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