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로 증권선물거래소(KRX) 통합출범 2주년이 됐다. KRX호는 통합에 따른 갈등, 감사선임의 잡음 등이 있었지만 당초 우려에 비해서는 비교적 순항하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통합출범 2주년인 27일 베트남에서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베트남 재무부가 베트남기업의 싱가포르 상장지원을 위해 구체적인 일정과 프로그램을 발표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4월초 하노이와 호치민시에서 2회에 걸쳐 베트남 기업을 상대로 국제적인 상장절차 및 회계감사준칙 등에 대한 정보와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의 정보 및 상장절차 등을 소개하는 회의가 개최된다.
또 9월에는 싱가포르에서 해외상장을 원하는 베트남 기업들이 싱가포르 등의 전략적 투자가와 만날 기회를 갖고 싱가포르 증권거래소 상장에 관해 직접적인 접근을 할 기회가 제공된다.
베트남 기업의 싱가포르 상장 프로그램은 베트남 재무부와 싱가포르 금융청이 공동 주도할 예정이다. 이는 결국 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베트남 기업의 싱가포르 상장을 추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식은 지난 연말 중국의 한 중소 섬유업체가 상장신청서를 제출해 즐거워하고 있는 KRX의 김을 빼놓기 충분했다.
◆외국기업 국내상장 별 메리트 없어
베트남 기업 주식의 한국증시 상장은 당초부터 현실의 고려 없는 무리한 탁상행정의 표본이었다.
베트남과 싱가포르는 같은 아세안(ASEAN) 가입국가로서의 상호이점이 큰 데다 국제화의 정도 및 지리적 접근성 문제, 그리고 밸류에이션 문제 등에서 베트남 우량주식의 한국증권거래소 상장 메리트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증시의 평균 PER는 10배 정도로 홍콩 17배, 싱가포르 27배 정도에 비해 불리한 상황이다.
실제로 베트남 우량기업들은 일찍부터 싱가포르 상장을 추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RX는 1년 전부터 베트남에서 상장유치를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해 12월 KRX가 베트남에서의 상장유치 세미나 개최, 베트남 투자공사와의 MOU 체결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것처럼 자랑한 지 한달 남짓한 기간이 지난 후 발표된 베트남 정부의 싱가포르 상장 지원 소식은 결국 이러한 노력이 KRX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 꼴이 됐다.
◆2008년 외국기업 30개상장, 2년전 이영탁 이사장 공약
국내상장에는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KRX가 굳이 해외기업들을 대상으로 상장 구걸을 하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영탁 KRX 이사장이 취임 때 내놓은 공약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이영탁 이사장은 2005년 1월 임명되자 마자 외국주식의 국내상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임기가 끝나는 2008년 초에는 외국기업 30개의 국내상장을 하겠다고 틈만 나면 약속을 해왔다.
출범 2년이 지난 지금 KRX의 유일한 성과는 화펑펑즈라는 홍콩상장 중국기업의 국내상장 심사신청이다.
그런데 화펑펑즈는 2006회계연도에 매출 700억, 순이익 100억원 정도를 기록한 중소섬유업체(자본금 10억)로 26일 현재 홍콩시장에서 액면가 0.01 홍콩달러(한국돈1.2원)에 0.425 홍콩달러 (한국돈510원)로 거래되고 있다.
외형기준으로 KRX상장기업 나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업체인 셈이다. 섬유업체에 대한 시장의 낮은 평가를 반영해 PER도 5.18배에 불과해 나산의 시장평가와 유사하다.
따라서 중견기업이라는 KRX의 소개와는 달리 한국에서 인정여부가 불투명한 섬유업체로 설령 국내상장심사에 통과하더라도 시장평가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할 지도 의문이다.
홍콩에 상장된 3000개 이상의 업체 중 하나인 중소기업의 국내 상장을 구걸하고 다닐 만큼 KRX가 한가한 지 의문이다.
또 베트남정부가 이미 해외파트너를 싱가포르 거래소로 정하고 준비작업 중인데 분위기 파악 못하고 짝사랑을 계속 할 것인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이사장 임기만료 맞춘 무리한 사업추진 재고해야
KRX는 올해 업무계획에도 변함없이 ‘중국 등 외국기업 상장 실현과 함께 베트남, 카자흐스탄, 필리핀, 인도 등으로 상장유치활동 확대 추진’을 주요 과제 중의 하나로 포함시키고 있다.
KRX는 단순한 외국기업 상장유치로 한국이 금융허브가 되는 것이 아니다. 도쿄증권거래소의 경우 127개에 이르렀던 외국 상장기업 수가 현재 30개로 줄었다는 교훈을 곱씹어 봐야 한다.
또 외국기업 국내상장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나 실익도 별로 없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투자적격심사(Due Deligence) 문제로 투자자 보호가 소홀해질 우려도 있다는 점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
KRX는 개인 회사가 아니다.
통합 출범 2주년을 맞아 임기가 1년 남은 이사장의 취임 공약을 위해 외국기업의 국내상장을 무리하게 추진해야 할지 심각히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외국기업의 국내상장을 위해 구걸과 짝사랑에 가까운 행동으로 해외에서 망신 당하는 KRX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