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등 업무용 고가 차량에 대한 무분별한 세제혜택으로 연간 최소 2조5000억원의 세금이 새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행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은 사업자의 업무용 차량에 한해 차 값뿐만 아니라 취득세, 자동차세와 보험료, 유류비 등 유지비까지 전액 무제한으로 경비처리가 가능하게 돼 있다. 따라서 그만큼 소득세와 법인세 과세 표준 금액이 줄어 개인 사업자와 법인은 세금을 대폭 줄일 수 있다.
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차(510종)와 국산차(3종) 등 총 10만5720대, 총 판매 금액 7조4700억원에 달하는 차량이업무용으로 사업자에게 팔렸다.
사업자들은 이 차량이 업무용으로 사용되는지 명확한 입증 없이도 5년간에 걸쳐차 값 7조4700억원을 모두 비용처리할 수 있다. 이런 경비처리 혜택을 최근 5년간 판매된 업무용 고가 차량 전체에 적용하면, 해마다 최소 2조4651억원의 세제 혜택이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점을 악용해 사업자들이 업무용으로 고가의 차를 산 뒤 사적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점이다.
과거 모 대기업 오너가 법인 이름으로 8억원이 넘는 고가 스포츠카를 리스 구매한 뒤 자녀의 통학용으로 사용해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특히 차량 가격이 비쌀수록 세제혜택 금액이 많다는 점을 악용해 일부 개인사업자와 법인들은 억대의 고가 수입 브랜드를 업무용 차량으로 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구매 단가가 4억원에 달하는 롤스로이스와 2억5000만원인 벤틀리, 1억8000만원인 포르쉐 등의 사업자 구매비중은 70%를 훨씬 넘는다. 롤스로이스의 경우 지난해 총 판매금액에서 사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97.9%에 달했고 벤틀리는 84.8%, 포르쉐 76.5%로 집계됐다.
벤츠(63.6%), 아우디(53.4%), BMW(51%) 역시 판매 차량의 절반 이상이 일반 개인이 아닌 사업자가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수입차 브랜드 가운데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폴크스바겐은 사업자 비중이 20.5%, 포드는 30.7%에 불과해 일반 개인고객 비중이 높았다.
고급 국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산 최고급 세단인 현대차 에쿠스의 사업자 비중은 77.2%였고, 제네시스와 기아차의 K9도 각각 47.4%와 62.8%였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일부 고가차 브랜드들은 ‘절세 가이드’를 만들어 사업자를 대상으로 고가차 판매를 부추기고 있다”며 “웬만한 서울 지역 아파트 한 채 값과 맞먹는 초고가 차량에까지 전액 경비처리를 하는 것은 시민의 혈세로 사업자들의 차량 구입과 유지를 지원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업무용 차량에 대한 과도한 세제혜택은 개인용으로 차를 구매하는 일반 소비자들과 비교할 때 조세형평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예컨대 수입차 BMW 520d(6390만원)와 국산차 제네시스 330 프리미엄을 구입한 개인소비자들은 5년간 취득세와 자동차세 등을 통해 약 4700억원의 세금을 냈지만 개인사업자와 법인은 최소 63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면제 받았다.
이에 따라 경실련은 차량 구입가격 3000만원을 기준으로 이를 초과한 금액에 대해서는 경비처리를 제한하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외국에서는 이런 제도를 시행 중이다. 캐나다의 경우 3만 캐나다달러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경비처리가 불가능하다. 국내 업무용 차량 구입비에 대해 캐나다 기준을 적용하면 법 시행 5년째가 되는 해부터 연간 1조5288억원의 세수가 확보될 것으로 경실련은 추정했다.
한편 개획재정부 법인과 개인사업자들이 고가의 차량을 리스하거나 구입할 때 비용을 전액 손비로 인정해 세금을 깎아주는 현행 세제를 개정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