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이 “이쁘다는 예쁘다의 잘못이다. 그러나 많이 쓰고 있으니 표준어로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말이 그래서 어색하게 들린다. 사람마다 어감이 다른 게 많으니 국립국어원의 일이 쉬울 리 없다.
송철의 국립국어원장이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쉽고 편한 우리말 가꾸기’ 계획을 발표하면서 변화된 현실의 표현방식이나 신어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규범과 현실언어 사이에 차이가 크므로 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어문규범을 유연하게 현실화하고, 전통성과 합리성을 지키는 범위에서 복수 표준어를 폭넓게 인정해 매년 사전 등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쉽고 편한 우리말 가꾸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쉽고 바른 우리말 가꾸기’가 아닐까? 요즘 국어원의 결정에는 의아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국어원은 지난달 ‘도긴개긴’ 등을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하고 ‘너무’를 긍정적 서술어와 함께 쓸 수 있게 인정한 바 있다. 그리고 ‘가격이 착하다’ ‘니가(네가)’와 같은 말도 표준어로 인정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원래 부정적인 서술에만 어울리는 ‘너무’를 부정·긍정 서술어와 모두 어울려 쓸 수 있게 한 것과, ‘가격이 착하다’는 표현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납득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많이 쓴다고 본래의 뜻이 왜곡된 단어를 수용해 결과적으로 사용을 권장하는 게 우리말 우리글을 가꾸고 지키는 국립국어원이 할 일일까?
이것은 도긴개긴을 사전에 올리고, 도찐개찐을 ‘도긴개긴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풀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국어원은 매년 신어를 발표해왔다. 금사빠녀(금방 사랑에 빠지는 여자) 극혐오하다(아주 싫어하고 미워하다)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따위가 최근 몇 년 새 신조어로 인정된 단어다. 이런 것은 글자를 축약하는 요즘 풍조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의미 자체가 왜곡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너무’의 용법 확대와 ‘착한 가격’ 식의 표현 인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식이면 요즘 대표적으로 잘못 쓰이는 말인 ‘유명세를 탄다’도 인정하겠다는 것인지? 누가 좀 유명해진 것 같으면 기자들을 비롯한 언중(言衆)은 유명세를 탄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유명세는 유명해져서 겪게 되는 불편이나 곤욕을 말한다. 한자로는 有名稅다. 유명세는 치르는 것이지 타는 게 아닌데도 이렇게 쓰는 사람들은 이 말을 有名勢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유명세를 탄다’도 인정하고, 요즘 흔히 듣게 되는 ‘팔 다리가 얇다’ 같은 표현도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 맞춤법은 참 어렵다. 글을 쓰다 보면 불평이 절로 나온다. 허접스레기나 허접쓰레기라야 될 것 같은데 맞춤법은 허섭스레기다. 뭔가를 업신여길 때 애개개나 애게게가 아니라 애걔걔라고 해야 한다. 이런 거나 좀 편하게 쓸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국어원은 이런 표기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채 시류와 유행만 좇으려 하는 것 같다. “1만 원이세요”와 같은 사물 존대, ‘~하실게요’와 같은 이상한 말의 범람과 오용을 막는 데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국어원이 ‘사랑’이라는 단어의 뜻풀이를 바꾼 과정을 보면 행정상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국어원은 ‘사랑’, ‘연애’, ‘애인’, ‘애정’의 뜻풀이에 성차별적인 표현이 있다는 이유로 2012년 10월 ‘이성’, ‘남녀’라는 단어를 빼고 중립적으로 수정했다. 이후 일부 종교단체 등이 재개정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자 재검토에 들어가 2014년 1월 29일 ‘남녀 간의 사랑’ 등 이성애 중심의 뜻풀이로 재수정해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했다.
표준국어대사전 정보보완심의위는 2013년 10월 29일 회의에서 뜻풀이를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는데도 당시 민현식 원장이 공식 심의기구도 아닌 자문회의라는 요식 행위를 거쳐 모두 이성애 중심으로 뜻풀이를 바꿨다는 것이다. 지금 ‘사랑’은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로 의미가 좁아졌다.
표준어 인정에서든 행정에서든 쉽고 편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쉽고 바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