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앞으로 15시간 이내에 그리스 3차 구제금융 지원의 전제조건인 개혁안을 의회에 입법처리 해야 한다. 돈을 빌려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이 며칠 전 17시간이 넘는 마라톤회의 끝에 “그리스가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는 이유로 이 같은 조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의회에서 입법을 거부한다면? 그리스의 시곗바늘은 치프라스 총리가 당선됐던 올해 1월이나,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각국의 외신들은 그리스 정부가 개혁안 의회 입법에 실패할 것이란 내용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치프라스 총리가 속한 시리자(급진좌파 연합)의 내부 분열”, “치프라스 총리의 실각” 등 그 내용도 다양하다.
그리스 개혁안 입법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5일 후가 상환 만료일인 유럽중앙은행(ECB)에 진 채무 35억 유로(약 4조4000억원)를 갚을 수 있느냐, 못 갚느냐에 대한 논란이 치열하다.
그러나 그리스도, 엄격한 ‘잣대’를 대는 국제통화기금(IMF)도, 치프라스 총리를 밀쳐내려고 하는 시리자 당원들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한 듯하다. 그리스가 갚아야 할 빚이 ECB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스의 부채 상환 만료일이 올해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그리스의 부채 현황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그리스는 40여 년 뒤인 2054년 4월 28일이 상환 만료일인 부채도 떠안고 있다. 이 채무는 그리스가 2차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시행했을 때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에 빌린 63억 유로다. 기관 및 기금 출처를 불문하고 채무 항목 건수만 따졌을 때 총 306건에 이른다.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이 왜 절실한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3차 구제금융은 그리스가 흙 먼지를 툭툭 털 수 있는 기반이다. 3차 구제금융이 불발된다면 지금의 그리스 어린이들이 40년 후,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은행 앞에서 일일 인출금을 뽑으려고 기다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금을 받으려고 은행 직원들과 언쟁을 할 수도 있다. 요새 외신들이 전하는 그리스 보도사진을 접했다면 이 같은 상상을 단순히 억측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스 속담 중에 ‘행동은 재빠르게 생각은 천천히’라는 문구가 있다고 한다. 그리스 의회가 현명한 판단으로 의사봉을 두드리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