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회가 진보와 보수의 양 날개로 날아야 한다고 할 때, 심상정 신임 대표의 탄생은 여러 가지로 의미를 가진다. 심상정 대표와 노회찬 전 대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진보 정치인으로, 이른바 NL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진정한 진보 노선을 걸어온 인물들이다. 한마디로 심상정, 노회찬 두 정치인은 유럽식 진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인물들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럽식 진보란, 경제적 문제와 그에 파생되는 인권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진보 정치에서 중요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 상황을 볼 때, 심상정 신임 대표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진보 정치의 폭을 넓히기보다는 ‘생존’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부터 풀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야권은 그야말로 산산조각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다른 의원과 원로들도 분당과 신당 창당을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이제는 새정치연합 의원이 독자적인 혁신안까지 발표하고 나섰다. 한마디로 당 지도부도, 혁신위도 모두 부정하겠다는 태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신당 창당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즉, 현재 존재하고 있는 ‘민주당’을 통해 이른바 ‘우회 창당’을 한다는 것인데, 이런 걸 보면 신당 창당이 임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뿐 아니다. 광주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천정배 의원 역시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다. 천 의원 역시 중도적 성향의 인물까지 포함해 전국 정당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여기에 정동영 전 장관이 활동하고 있는 ‘국민모임’도 있다.
이런 상황을 요약하면 지금 야권에 존재하는 신당 창당 움직임은 최소 3개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의당의 입장에선 고민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세(勢)를 불린다는 차원을 넘어 다음 번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소 이들 세력 중 하나와는 연대해야 하는데, 이것이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지금은 천정배 의원 측과 정의당의 연대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천정배 의원 측과 동교동계의 연대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이것은 결국 어떻게든 짝짓기를 해서 세를 불린 다음, 다른 정당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인데 처음 누구와 합하느냐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이 있다. 지금 이런 상황은 야권이 아직도 ‘통합 만능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야권의 ‘통합 만능주의’는 과거부터 존재해 왔던 일종의 ‘습관’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정치 전략으로 보지 않고 ‘습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과거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야권이 통합을 이룬다 하더라도 선거에서 승리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브라질을 예로 들면서 이른바 ‘빅 텐트론’까지 주장하며 통합했지만 선거에서는 실패했다. 그런데도 신당 창당이 제대로 이뤄지기 전부터 ‘통합론’이 나오는 것을 보면 진짜 ‘습관’이란 표현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니 정치학자나 정치 평론가들은 지금 야권의 분열 상황에 대해 별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언젠가는 다시 합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분열상이란 단지 이권싸움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이런 생각을 불식시키고 신당 창당의 파괴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합집산의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즉, 정의당은 정의당대로 분명한 진보 노선을 천명하며 자기 갈 길을 가고,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이들은 중도의 길을 끝까지 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이런 모습을 보이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정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권자들에게 보다 많은 선택의 기회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