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의 고령이라 상황 판단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는 건강상에 큰 문제가 없는 듯하다. 그런 그가 막장 드라마 같은 노후를 맞고 있다. 1948년 자신이 작명한 회사 롯데의 대표를 맡은 지 67년, 일본에서 첫 사업을 시작한 지 70년 만에 쓸쓸한 퇴장을 앞두고 있다. 그것도 자식에 의해.
롯데 경영권 분쟁은 진행 중이어서 신 총괄회장의 앞으로 역할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들 두 명의 다툼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하는 착잡한 심정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재벌가는 원래 일반에게 잘 공개되지 않는다. 신 총괄회장뿐만 아니라 재벌가 대부분이 철의 장막을 쳐놓고, 외부와 단절한 채 몇몇 참모와의 협의를 통해 회사를 이끌고 있다. 언론도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래서 신 총괄회장이 평소 소통을 잘 하는지, 주변에 능력 있는 참모들을 두었는지, 왜곡된 정보를 접하지 않았는지 명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왜 몇 년 전 더 건강했을 때 후계구도를 분명히 정해놓지 않았는지, 그 이유도 확실하지 않다.
형제의 분란을 보고 있는 친모 시케미쓰 하츠코씨도 신 총괄회장과 마찬가지로 가슴이 찢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녀 역시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라고 몇 번이나 읍소했을 터이다.
형제를 비롯해 가족들은 이번 다툼이 저자거리의 술자리에 좋은 안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렇게 돈이 좋은가”, “재벌들은 왜 툭하면 싸움이지” 등등…. 어떤 이는 이미 누가 맞다, 누가 잘못했다고 단언까지 한다.
이제 소송전과 주주총회 표대결로 확산될 조짐이어서 내막이 어느 정도 공개되겠지만, 얽히고설킨 감정싸움의 잘잘못을 가리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법의 잣대로 후계자의 정당성을 판단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재판이 몰고 올 후폭풍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다.
형제간의 다툼이 오래갈수록 롯데그룹은 누더기가 되갈 것은 자명하다. 국내에만 12만 명, 해외 6만 명 등 18만 명에 달하는 임직원은 뒤숭숭한 시간을 보내고, 롯데그룹은 갈팡질팡할 것이다. 롯데 한 기업만의 문제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려는 경제활성화의 시동을 걸어야할 시점에 반재벌 분위기를 확산, 재계의 의욕을 무산시키고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롯데가(家) 가족간 협의를 통해 원만한 해결을 바랐던 게 온 국민의 마음이다. 그러나 환갑을 넘어선 형제는 오랜 세월동안 갈등의 골이 켜켜이 쌓여 결국 우애는 갈라지고 아예 원수가 되는 모양새다.
신동주-동빈 형제도 처음부터 앙숙은 아니었을 것이다. 연년생인 그들은 형제가 으레 그렇듯 어렸을 때 더운 여름이면 동네 개울에 나가 물장구치면서 함께 장난쳤을 것이다. 동생이 동네 불량배에게 놀림을 당하면 형이 대신 나서 주먹질을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랐겠지만, 그들은 이제 ‘의절’이라는 되돌아오기 어려운 강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형제간 다툼의 원인을 누가 먼저 제공했는지는 모른다. 분명 사소한 것에서 출발했을 첫 원인 제공의 잘못을 묻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형은 관계가 악화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손을 내밀었다고 주장하지만, 동생 측 얘기는 다르다. 오히려 형제의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이 롯데를 본인 소유의 구멍가게로 인식하는 경영관과 일찌감치 경영권을 내려놓지 않은 욕심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책임론도 나온다.
세계적인 부호 빌 게이츠는 이런 점에서 경영자로서의 올바른 아버지상(像)을 보여준다. 그는 지금까지 30조원이 넘는 돈을 기부한 것은 차치하고, 세 자녀에게 각각 1000만 달러씩만 물려준다고 공언했다. 그의 재산의 0.017%씩에 해당하는 액수다. 거액의 유산은 오히려 자녀들의 앞길을 망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러면서 아이들이 직업을 갖고 일을 하며 열심히 살기를 바라고 있다.
신 총괄회장도 형제에게 일부 유산만 남겨주고 롯데를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면 어떨까. 현실성 없는 나만의 순진한 상상에 불과하겠지만, 가족애와 우애를 중시하는 가정교육에 충실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롯데가의 명예를 위해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