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총괄회장을 지근 거리에서 보필해온 ‘복심(腹心)’이 전격 교체됐다. 24년간 왕회장을 보필해온 김성회 비서실장(72ㆍ전무)이 사임하고, 그 자리를 이일민 롯데정책본부 전무가 차지하면서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전무는 1992년 롯데그룹 기획조종실(정책본부의 전신)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신 총괄회장의 그림자 역할을 한 최측근이다. 72세의 나이에도 신 총괄회장이 ‘김군’이라고 부를 정도로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다. 신 총괄회장이 예고없이 경영 현장을 찾을 때에도 김 전무는 늘 동행해 왕회장의 의중을 계열사에 전달하기도 했다. 롯데그룹 내에서는 신격호의 ‘수족’과도 같은 존재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김 전무가 이번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롯데호텔 34층 왕회장의 집무실에 신 회장 측근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문지기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인사가 사실상 ‘문책성 해임’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신총괄회장의 집무실인 롯데호텔 34층 스위트룸을 그동안 ‘反 신동빈 세력’이 장악하는 데 동조했다는 것이다. 김 전무는 신동주 전 부회장,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 등이 신 총괄회장을 앞세워 신 회장 등 6명의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를 해임할 때도 동행했다.
반면 새로 임명된 이일민 비서실장은 신 회장의 전 비서실장이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신 회장의 비서를 맡아 그를 수행했다. 신 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수족을 끊어내고 롯데호텔 34층을 접수해 사실상 그의 주변을 장악했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반 신동빈 세력의 아지트였던 롯데호텔 34층의 변화된 풍경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11일 일본으로 출국한지 나흘만에 돌아온 신 전 부회장이 아버지 곁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고립무원 상태다. 경영권 다툼 초반 기세등등했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장남과 함께 했던 장녀 신 이사장도 일주일째 재단 집무실을 비운 상태다. 신 총괄회장의 5촌 조카인 신동인 구단주 대행은 사의를 밝혔다. 신 전 부회장의 ‘입’을 자처했던 신선호 회장도 종적을 감췄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가 이번 인사를 경영권 분쟁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전세가 신동빈 회장 쪽으로 기울면서 예고된 수순 아니었겠냐”며 “경영권 다툼에서 사실상 신 회장이 승기를 잡은 시그널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