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약세가 단기적으로는 수출기업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원화 절하가 수출기업에 마냥 긍정적이라고 여겨졌던 기존의 통념과 달라 눈길을 끈다.
28일 한국은행이 ‘지역경제보고서’에 게재한 ‘환율충격이 제조업체 생산성 및 고용에 미치는 파급효과 분석’에 따르면 실질실효환율 하락(원화 가치 하락)은 단기적으로는 대구·경북 지역 제조업체의 부가가치 및 노동생산성을 증대에 이바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편주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원지환 한은 대구ㆍ경북본부 과장이 통계청의 기업활동조사 자료를 토대로 2006∼2012년 실질실효환율 변동에 따른 대구·경북지역 926개 제조업체의 생산성 및 고용 변화를 조사했다.
조사에 따르면 수출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가진 기업일수록 생산성 향상에 더 긍정적인 효과를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국 통화 가치의 하락이 수출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수출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통상적인 견해와 일치한다.
그러나 실질실효환율 하락이 지속할 경우 수출기업들이 누리던 긍정적인 생산성 향상 효과가 사라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편 교수는 “통화 절하가 장기간 지속할 경우 느슨한 경쟁 환경에 처한 기업은 구조조정과 효율적인 자원배분에 느슨해진다. 핵심 역량 배양 및 기술혁신 노력도 소홀하게 된다”며 “그 결과 단기적으로 나타난 긍정적인 생산성 효과가 소멸했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통화 절하가 수출 제고에 미치는 단기간의 긍정적 효과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영국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세계은행(WB) 소속 경제분석가들이 세계 46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요즘 통화 가치 절하의 수출 증대 효과는 1990년대 중반의 절반에 그쳤다.
편 교수는 “단순히 가격경쟁력을 확보해 국외시장에 진출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핵심역량 배양과 기술혁신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정책 당국도 명목 환율에 집착하지 말고 기업들이 실질적인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필요한 기술혁신에 매진할 수 있는 구체적 투자 및 금융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