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운용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7월부터 실시한 국민연금의 위탁 운용사 수익률 일일평가 제도 때문에 등골이 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운용사들의 속앓이 배경이 된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 일일 평가 제도는 15년 만에 바뀐 것이다.
원래 국민연금의 위탁 운용사 정기 평가는 6월과 12월, 1년에 두 차례 실시되며 위탁운용사들의 3년, 5년 중장기 성과를 비교해 최상위 S등급부터 C등급까지 등급을 매겨 자금을 배정해왔다. 현재 국민연금이 운용사들에게 위탁한 자금만 총 45조원에 이른다.
그동안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에 선정된 운용사들은 투자금을 안정적으로 꾸준하게 운용한다는, 장기투자 철학이 뛰어난 ‘에이스급 운용사’로 대변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7월부터 국민연금이 국내 자산운용사에 위탁한 운용사들의 주식 자산 1년 수익률을 날마다 점검하는 일일평가 시스템을 도입하자, 기존에 3년, 5년 수익률로 위탁 받아온 운용사에서 자금 회수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실정이다
일례로 펀드의 1년 영업 수익률이 3영업일 이상 벤치마크(BM) 대비 4%포인트를 하회할 경우 1차 주의 단계로 신규 자금 배정을 제한하고, 7%포인트를 밑돌면 2차 경고 단계로 위탁자금 30%를 회수한다. 여기에 한 달 동안 유예기간을 준 뒤 다시 3영업일 동안 수익률이 BM 대비 9%포인트르 하회하면 위탁자금을 전액 회수하는 방식이다.
A운용사 관계자는 “올해 시장을 이겼어도, 지난해 성과가 부진하면 무조건 위탁자금을 토해내야 한다”며 “국민연금이 단타로 운용사들의 위탁자금을 평가하다 보니, 자금을 뺏기지 않기 위해 1조 이상 위탁 자금을 굴리는 운용사들의 펀드매니저들은 최근 밤을 샐 지경”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운용업계 관계자도 “올해 만약 20% 이상 성과를 냈어도, 내년 같은 시기에 20% 이상 아웃퍼폼하지 못한다면 꼼짝없이 자금을 회수당할 수밖에 없다”며 “회사 내부에서 그간 국민연금 위탁운용 펀드는 에이스급 펀드매니저들이 독점해왔는데, 이제 아무도 국민연금이 위탁한 자금을 맡지 않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실제 일일평가 시스템으로 위탁운용 평가 방식이 바뀌면서 수천억원에서 1조원 넘게 자금을 회수 당하는 운용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간 기관자금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운용사들은 회사의 정체성을 바꿔야 할 위기까지 처했다고 하소연한다.
또 다른 금투업계 고위관계자는 “지난달부터 시장 변동성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일일평가 시스템 부작용이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며 “실제 일일평가 기준에 맞춰 운용사들이 무리한 모멘텀 플레이를 하다 보니 종목이나 주가의 위험 변동성이 커지는 등 시장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언급했다.
업계의 불만이 이처럼 잇따르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도 시행 두 달 만에 일일평가 시스템의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400조원이 넘는 공적연금을 운용하는 기관에서 일일평가 기준으로 운용사들의 단기 성과를 평가하는 일은 장기투자 철학과는 맞지 않는 모순적 행동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국민의 돈을 안정적으로 운용해 꾸준한 장기 수익률을 제공한다는 자부심으로 자본시장을 지켜온 운용사들은 초단타 매매 평가에 울상을 짓고 있다. 운용사들 간 경쟁을 유도한다는 국민연금의 일일평가 시스템이 자칫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