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영국 언론 ‘블랙 코미디’ 유감

입력 2015-10-2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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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팀장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청으로 영국을 공식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총 400억 파운드(약 70조원)에 달하는 경제 협력을 약속하고 자국으로 돌아갔다.

영국 정부는 시 주석이 영국에 머무는 동안 공식 만찬, 상하 양원 및 금융 중심가 런던시티에서의 연설 기회를 제공하는 등 극진하게 대접하며 양국 간 ‘황금시대(Golden Age)’의 개막을 대내외에 알렸다.

시 주석이 미국에 이어 영국에서도 거액의 경제 협력을 약속하자 그의 통 큰 외교에 부러움과 시새움이 뒤섞인 보도가 연일 외신의 지면을 장식했다. 그러나 정작 미간을 찌푸리게 했던 건 자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한 시 주석에 대해 조소 섞인 기사들을 쏟아낸 영국 언론들이었다.

영국 무가지 메트로는 시 주석이 런던시티에서 연설하는 도중 옆에서 주최자가 졸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시 주석은 당시 연설에서 중국이 과거 37년 이상의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음을 강조했다. 또한 연설에서는 중국이 과거 입헌군주제와 의회, 대통령제 등을 도입하려다 실패하고 그것을 반면교사로 부득이하게 사회주의의 길을 택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27분간 이어진 그의 중국어 연설을 통역을 통해 들어야 했다. 하필 그때 시 주석의 옆에서 영국 왕실 에스코트 역할을 하던 앤드루 왕자가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린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의회제가 탄생한 요람에서 나타난 시 주석의 난감한 순간(Awkward moments for Xi in ‘mother of parliaments’)’이라며 비아냥 섞인 기사를 내보냈다.

사실 당시 시 주석의 연설 내용을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영국 매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국의 힘을 과시했다’는 등 신랄한 논평이 줄을 이었다.

또한 시 주석의 연설 내용 중 “영국은 가장 오래된 의회제 국가이지만 중국은 2000년 전부터 법치의 중요성을 말했다”며 민주주의와 관련해 자국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려는 자세를 은연중 내비쳤다. FT는 이에 대해 법 지배의 이념을 낳고, 근대 민주헌법의 초석이 된 마그나카르타 제정 800주년을 맞아 중국에서 순회 전시하려던 일정이 갑자기 당국에 의해 중단된 점을 언급하며, 중국이 법치와 민주주의를 강조할 자격이 있느냐, 자신들에게 유리한 역사만 언급했다는 등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시 주석 내외를 화장실 앞에서 영접한 사실도 논란거리가 됐다.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이 시 주석 내외를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영접해 회담한 임시 회견장이 회장실 앞임을 나타내는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영국식 블랙 코미디’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한 나라의 정상과 VIP룸이 아닌 화장실 앞에서 회담하는 건 외교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행위라는 비난이 고조됐다.

이 같은 블랙 코미디는 시 주석의 부인인 펑리위안 여사에게도 향했다. 일부 영국 언론이 화장이 잔뜩 들뜬 모습으로 공식 석상에 등장한 펑리위안 여사의 얼굴을 근접 촬영한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중국의 영부인은 한순간에 웃음거리가 됐다.

영국 언론의 도를 넘은 보도 경쟁에 중국인들은 분노했고, 화살을 미국으로도 돌렸다. 지난 9월 시 주석이 방미 일정 중 시애틀에서 비공식 만찬에 참석했을 당시, 시 주석이 중국인임에도 메뉴가 일본식으로 표기된 점과 싸구려 와인이 나왔다는 내용이다. 시 주석은 미국 방문 중 보잉사에서 항공기 300대를 주문했다. 이는 50조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액수다.

블랙 코미디는 윤리적으로 피하게 되는 금기에 대한 풍자적인 농담을 가리키는 말로 서구 중에서도 특히 영국인들이 즐기는 문화다. 영국과 중국은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으로 일컫는 아편전쟁을 두 차례나 치렀다. 영국은 이를 통해 중국에 뼈아픈 수모를 안겼으나 중국 입장에서 영국은 근대화 시기 국가체제의 본보기가 됐던 선진국이기도 하다.

이번 양국 간 황금시대 선언을 계기로 중국과 영국이 과거사를 청산하고 새출발하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 영국 언론들의 블랙 코미디를 방불케 하는 보도 경쟁은 제3자가 보기에도 불편했다. 영국은 G2로 부상한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내부 단속이 더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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