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계 국가에서는 대체적으로 은산분리 원칙을 지키는 것이 요구되고, 독일을 비롯한 대륙계 국가에서는 겸업은행(universal banking)이 허용된다. 이러한 구분은 은행이 어떤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가, 혹은 (거의 동일한 이야기로) 은행을 누가 소유할 수 있는가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간단히 이야기해 은산분리 하에서는 은행이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제한되고 겸업은행에서는 이러한 제한이 없다. 이러한 제한을 두는 이유는 은행이 예금자들의 예금을 주식에 투자하는 경우 자신이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는 기업에 특혜 대출할 가능성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영미계 국가들의 은산분리 원칙은 1929년 대공황에 대한 대응책으로 마련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은산분리와 겸업은행이 서로 다른 선진경제에서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상 금융시장이 가장 발달된 나라는 미국과 영국으로 여겨지지만 독일을 비롯한 대륙계 국가 역시 매우 발달된 금융시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규제 체계의 차이가 금융시장의 발달 정도에 따라 생겨나지는 않는 듯하다. 또한 은행의 투자 대상에 관한 규제에 있어 이 규제는 옳고 저 규제는 틀리다는 이야기도 하기 어렵다고 보인다.
금융 규제의 형태는 그 나라의 관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미계 국가에서는 은행이 기업들과 너무 가까워 예금주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한 역사가 있었으므로 그를 규제하였고, 이제는 당연히 은행들은 기업과 너무 가깝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받아들여지는 반면, 독일에서는 은행이 기업들과 가까이 지내고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친밀한 관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상호 협조를 만들어 낸다. 좋은 관행이 만들어지면 겸업은행 체계 하에서도 은행들의 특혜대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의 금융 규제는 형식적으로는 은산분리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기업대출 성과를 보면 은산분리라는 말을 하기가 무색하다. 2년 전 STX, 그리고 최근의 대우조선 등 대형 부실 사례는 은산분리 규제가 별 실효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관행은 은산분리라기보다는 관치 내지 정치 금융이다. 형식적으로는 은행들이 기업과 가까운 관계를 가지지 않았지만 정부 혹은 정권이 의도하면 못 할 것이 없다. 은산분리 원칙이 채택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은행이 일부 기업에 대한 특혜를 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인데 아무리 그래 보았자 정부가 하라고 하는 대출은 막무가내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문제는 이제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우리나라에 너무 많은 사회적 비용을 만들고 있어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를 고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규제를 고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은산분리 원칙이 적용되므로 은행들이 정부나 정권의 요청을 거절하기만 한다면 비정상적인 대출은 생겨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은행들은 사실상 정부나 정권과 공조를 하는 경향이 크다. 즉 정부나 정권의 청을 들어주고 자신들의 이해를 챙기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나 정권이 그러한 청을 못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민간에서도 그런 청을 들어주고 반대급부를 얻는 것을 없애는 일이다. 민간에 대한 반대급부 중에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이 인사상의 특혜, 즉 낙하산이다. 정권 덕택에 자리를 차지한 은행 임원이 정권의 청을 거절할 가능성은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 금융관행을 고치기 위해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금융권 인사에 대한 정권의 영향력을 없애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