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은 양반'…30여년 만에 철퇴 맞은 교수 표지갈이

입력 2015-11-24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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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학에서 만연한 교수들의 비리 관행의 실체가 30여 년 만에 드러났다. 목전의 이익에 눈이 먼 나머지 전공서적 '표지갈이' 수법으로 제자들에게 양심을 판 파렴치 행각이 검찰 수사로 들통난 것이다. 대학 캠퍼스의 순수성이 오염된 것은 원저자와 허위저자, 출판사가 '검은 고리'로 끈끈하게 엮인 탓이다.

표지갈이는 연구실적 등을 부풀리고자 남이 쓴 책을 자신이 낸 것처럼 표지만 바꾸는 출판 수법이다.

의정부지검(김강욱 지검장)이 24일 입건한 교수들은 표지갈이 범행을 직접 저지르거나 방조한 혐의를 받는다. 상당수 교수는 재임용 욕심에 동료 교수가 오랜 기간 땀 흘려 일궈낸 연구 성과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훔쳐 새 책을 냈다. 이렇게 출간된 전공 서적을 제자들에게 팔아 돈벌이도 했다. 저작권을 침해하고 대학업무를 방해한 것은 물론, 어렵게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스승으로서 몹쓸 짓을 한 것이다.

표지갈이는 전공서적을 지은 교수와 저자 이름만 넣은 교수, 출판사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생긴 범죄다.

이공계 관련 전공 서적은 잘 팔리지 않아 출판업계에 인기가 없다. 이공계 교수들이 신간을 내고 싶어도 출판사를 쉽게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다.

원저자인 이공계 교수들은 나중에 책을 내려는 욕심에 출판사를 미리 확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동료 교수와 출판사의 표지갈이를 알고도 눈을 감아준다.

'3각 범죄' 구조에서 허위저자들이 표지갈이에 가장 적극적이다. 단독저자 또는 공저자로 둔갑한 이들은 표지갈이 서적을 연구 실적으로 꾸며 재임용심사나 연구용역 수주에 이용한다.

대학마다 평가기준이 다르지만, 책을 펴내면 대부분 연구 실적으로 인정해준다. 책 1권을 상위 30% 국내학술지에 논문 한 편 발표하는 것과 동일한 평가를 하는 곳도 있다. 수업 교재로 제자들에게 팔아 인세를 챙기는 것은 덤이다.

출판사도 표지갈이로 1석3조의 이득을 얻는다.

잘 팔리는 전공서적의 저자가 다른 출판사로 옮기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원저자와 허위저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저자 풀'을 확보할 수도 있다.

출판사는 팔다 남아 창고에 쌓인 전공 서적을 처리하는 데도 표지갈이를 활용했다. 저자의 이름만 바꾸면 해당 교수한테서 수업받는 학생들이 재고 서적을 선뜻 사들이는 점을 노렸다.

출판사는 재임용을 앞둔 교수들에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표지갈이를 노골적으로 권유한다.

표지갈이는 1980년대부터 성행했다. 전국 대학가에서 오랫동안 악취가 진동했음에도 그동안 적발되지 않은 것은 진위 판단이 쉽지 않은 탓이다.

표지만 바꾸면 온라인으로 표절 여부를 검색할 수 없다. 전공 서적을 여러 권 사는 학생이 거의 없는 현실도 범행 은폐에 도움이 됐다.

표지갈이는 표절보다 더 나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표절은 전체 논문의 일부를 베끼는 것이라면 표지갈이는 원저자의 연구성과를 통째로 가로채는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에 연루된 일부 교수는 공무원 수준의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국공립대학 소속이다.

이들 대학은 올바른 학문 연구와 동료 교수의 교육 및 연구 활동 존중 등을 요구한다. 교육자의 양식과 품위를 토대로 도덕성을 유지하며, 부당한 방법으로 이익을 챙기지 못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런 윤리 강령은 '표지갈이' 교수들에게 한낱 장식품에 불과했다.

검찰은 늦어도 다음 달 중순까지 해당 교수들을 기소한다는 방침이어서 전국 대학가에 사상 유례없는 파문이 예상된다.

각 대학은 사회문제화된 논문 표절을 근절하기 위해 엄단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해당 교수들은 벌금 300만원 이상의 선고를 받으면 재임용 대상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더라도 가짜 책으로 확인된 연구 성과는 무효가 되므로 실적 미달로 퇴출당할 수 있다.

검찰은 12월 중순까지 수사를 마무리하고 입건된 교수 전원을 기소할 방침이다. 내년 3월 개강을 전후해 교수들이 대거 강단에서 쫓겨나는 초유의 사태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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