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자산 50조 회사가 손익을 8000억원 이상 과대계상하면 금융 당국이 대표를 해임할 수 있게 됐다. 금융당국이 분식회계를 막고자 처벌 규정을 세분화한 것에 대해 관련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 사태의 책임을 민간에게만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기관은 이번 사태를 책임지지 않으면서 민간의 처벌규정만 강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2일 본지가 입수한 금융감독원의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범)’ 시행세칙 내부규정에 따르면 기업이 분식회계를 했을 때 대표이사와 감사를 해임 권고할 수 있는 기준을 자산규모 대비 손익 과대계상 비율에 따라 세분화했다.
금감원은 규모(자산총액과 매출액을 평균한 금액)가 200조원인 회사의 경우 6조4000억원의 손익을 부풀렸을 때 중과실 1단계로 산정했다. 중과실 2단계는 3조2000억원이다. 규모가 50조원인 회사는 손익 과대계상 규모 1조6000억원과 8000억원이 각각 중과실 1, 2단계다. 이어 자산 1조원 회사는 762억원이 중과실 1단계, 381억원이 2단계에 속한다. 이처럼 금감원은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중과실로 인정하는 과대계상 비율을 낮춰 처벌을 용이하게 했다.
이 중 금융당국이 기업의 대표를 해임할 수 있는 과대계상 수준은 2단계다. 금감원 조사에서 기업 분식회계의 고의성이 밝혀지면 금융위원회의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 정부가 기업의 대표를 해임 권고할 수 있다. 회사 감사는 직무소홀이 인정되면 중과실 2단계일 때 해임 권고 조치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이 같은 조치가 과도하다는 의견도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관리 부실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만큼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이다. 또 기업의 처벌 규정을 세분화하는 것은 ‘처벌 만능주의’로 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중견기업 관계자는 “과징금 규모 상향에 이어 기업의 인사까지 정부가 관여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의 대표이사를 직무정지하거나 검찰에 고발하는 조치에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는 아무도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1차 책임자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과 회계법인에만 짐을 지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업계의 불만을 알고 있다”면서 “이번 시행세칙 마련은 감사의 실효성과 회계 품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세칙은 내년 2월 이후 발행되는 감사보고서부터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