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전에도, 천 년 후에도 약자는 강자한테 빼앗긴다. 강자는 약자를 병탄(倂呑)하고 인탄(蹸呑)한다. 이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가 자신의 재산 96%에 달하는 450억 달러(52조 원)를 기부한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드라마의 한 대사가 귀를 때린다. SBS 사극‘육룡이 나르샤’에서 부패 권력의 정점인 고려 시중, 길태미(박혁권 분)가 죽임을 당하면서 던진 말이다. 방송 후 상당수 시청자들은 길태미의 대사를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수긍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란다.
강자가 약자를 병탄하는 행태들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접한 52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저커버그의 기부 액수도 놀랍지만 정작 가슴을 요동치게 한 것은 그의 딸, 맥스(Max)에게 쓴 편지다.
저커버그는 편지에서“다른 부모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네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란다.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이들의 삶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모든 아이에게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고 기부 배경을 설명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평등 증진은 모든 이가 국적, 가족, 태어난 환경을 불문하고 인간 잠재력을 깨울 기회를 보장받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정의나 자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류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 평등을 증진해야 한다”고.
마음을 움직이는 저커버그의 딸에게 쓴 편지에 향했던 시선이 어느 사이 냉혹한 우리 현실로 향한다. 우리 현실 상황과 권력층과 재벌 등으로 대변되는 강자의 행태는 어떤가. 사극 ‘육룡이 나르샤’의 길태미 대사를 입증이라도 하듯 우리 사회의 강자들은 약자를 병탄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사회는 인구 20%의 부와 행복을 위해 나머지 80%가 빈곤과 비참을 강제당하는 ‘20대 80 사회’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더 나아가 ‘1% 강자의 탐욕 그리고 99% 약자의 분노’로 대변되는 1대 99라는 극단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홍수를 이룬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강자들이 약자들에게 주고 되돌려받는 ‘전유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through appropriations)’시대가 끝나고 강자들이 주는 것도 없이 약자들의 것을 빼앗아버리고 빚지게 하는 이른바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through dispossession)’의 코드가 지배하는 무자비한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이 때문에 희망과 도전, 꿈으로 부풀어 있어야 할 이 땅의 청년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N포의 삶을 살고 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최근 출간한‘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한 세대가 꿈을 포기했다면 그 사회는 미래가 없는 죽은 사회인데 바로 2015년의 대한민국 사회가 그렇다고 했다.
저커버그는 후세대가 살아갈 세상이 더 좋아지기 위해서는 강자와 약자의 불평등 문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구현할 이상으로 빈곤과 기아퇴치,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보편의료, 포용력 있는 공동체, 평화와 관용을 꼽았다. 불평등이 심화 될 대로 심화해 1대 99의 사회, 미래가 없는 죽은 사회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우리 사회의 강자들이 반드시 새겨야 하고 실천해야 할 부분이다.
왜 그래야 하냐고? 그 대답은 월급 일부를 늘 가난한 학생 수업료를 대신 내주는 데 쓰는 이유를 묻는 어린 제자의 질문에 답한 내 중학교 은사의 말로 대신할까 한다. “가난한 집 아이가 잘 커야 사회도 건강해지고 부잣집 아이도 잘 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