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 들어간 성어에는 좋은 말이 적어 보인다. ‘속은 양인데 거죽은 호랑이’라는 양질호피(羊質虎皮)는 표리부동(表裏不同)과 같다. ‘겉은 호랑이인데 속은 양’이라고 할 수도 있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과 통한다. 외강중간(外强中干) 양질호형(羊質虎形)도 비슷한 말이다.
중국 한(漢)대의 양웅(揚雄)이 지은 ‘법언(法言)’ 오자(吾子) 편에 양질호피가 나온다. “어떤 이가 ‘공자의 문하에 들어가 그 안채에 올라 공자의 책상에 엎드리고 공자의 옷을 입는다면 공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니 ‘그 무늬는 그렇지만 그 바탕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가 다시 “바탕이란 무엇을 말하는가요?” 하고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양은 몸에 호랑이 가죽을 씌워놓아도 풀을 보면 좋아라 뜯어 먹고, 승냥이를 만나면 두려워 떨며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사실을 잊어버린다.”[羊質而虎皮 見草而說 見豺而戰 忘其皮之虎矣]
정도전의 ‘농부에게 답하다’[答田父]라는 글에도 양질호피가 나온다. 김매는 농부가 그에게 무슨 죄를 지어 이 산골에 왔느냐고 묻는 대목이다. 정도전은 농부라는 가상인물을 통해 삶을 반성하고 있다.
“그러면 대장이나 원수가 되어 (중략) 마음엔 자만심이 가득 차고 뜻에는 기운이 성해서 조사(朝士)들을 경멸하고, 적을 만나면 호피는 좋으나 마음은 양같이 겁을 잘 내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치기에 바빠서 많은 생명을 적의 칼날에 버리고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기라도 하였소?”[然則豈爲將爲帥 (중략) 惟意所恣 志滿氣盛 輕侮朝士 及至見敵 虎皮雖蔚 羊質易慄 不待交兵 望風先走 棄生靈於鋒刃 誤國家之大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