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우리처럼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가 무작정 외부의 악조건들이 해결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무역 1조 달러를 회복하고 2조 달러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비책이 필요하다. 중장기적 측면에서는 수출 대상국을 다변화하는 한편, 중간재 대신 고부가가치 소비재 중심의 수출로 무역구조를 바꿔 가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단기간 내에 해결하기 힘든 과제다. 대신 중소·중견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다양한 결정인자 중에서 우리 스스로 통제 가능한, 선제적으로 대응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중소·중견기업들이 수출에 필요한 기초체력을 키워서,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판매 실적을 올리는 현실적인 방안은 바로 수출하려는 나라의 현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현지형 제품 연구·개발(R&D)’이다. 나라별로 시장 상황은 물론 규제 수준이나 그 내용이 다르다 보니, 여기에 맞춰서 재빨리 제품 사양을 변형하거나 업그레이드해 시장에 내놓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출기업들이 애로 사항으로 꼽는 대표적 요소 중 하나가 무역기술장벽(TBT, Technical Barriers to Trade, 무역 당사국 간 기술표준이나 규제 수준이 다른 것 때문에 자유로운 교역을 방해받는 것)에 대응하는 것이다. 현재 각 나라에서는 자국의 환경 보호 및 안전 강화 등을 명목으로 각종 인증과 기술 규제를 만들어 이를 철저히 준수하도록 요구하는 추세다. 여기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좋은 제품을 개발해 놓고도 통관이 지연되거나 아예 수출이 좌절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들이 기술 개발할 때 국가별 무역기술 장벽을 고려한 ‘애로 해결형 R&D’를 한다면 현지 시장을 공략하는 데 있어 보다 수월해질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 내 원산지 규정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좋다. 국내 중소기업 제품이 FTA 원산지 규정에 부합하면 관세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도, 인건비 상승 여파로 국내 제조생산 기반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탓에 종종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높아질 수 있도록 핵심 소재·부품의 국내 생산 비중을 높여 나간다면 FTA를 활용한 가격 경쟁력은 더 높아질 것이다.
물론 단일 중소·중견기업의 역량만으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국가별 시장 상황을 파악해 체계적 R&D 전략을 세우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지난해부터 무역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는 국내 중소·중견기업을 위해 ‘문제 해결형’ R&D를 지원하는 중이다. 기존 제품의 사양을 국제 기술표준이나 현지 환경규제 내용에 맞게 다시 개발하거나, FTA 원산지 규정에 부합하도록 제품을 추가 개발하려는 기업이 혜택을 받았다. 수출 잠재력이 큰 월드클래스300 기업이나 글로벌 강소기업 등이 지원받는다면 비교적 단기간 내 수출 규모를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출은 우리 경제에 온기를 돌게 하는 혈액이자, 활력을 선사하는 엔도르핀이다. 그만큼 올해는 ‘무역 1조 달러 회복’을 지상 과제로 삼고 수출 경쟁력 강화에 역량을 집중하는 정부의 각오도 남다를 전망이다. 우리 중소·중견기업들도 여기에 부응하여 보다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해외 진출 및 수출 확대에 나선다면, 지금은 다소 엉켜 있는 듯한 수출의 실타래도 조만간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