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부동산시장은 이사수요가 들끓기 시작하는 2월부터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러다 3월 봄철 이사철이 오면 연중 가장 큰 폭의 거래량과 집값 상승세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업계의 분양시즌인 4월이오면 이와 맞물려 또한번 거세게 요동친다. 그러다 봄 이사철이 마감되는 시점인 5월 중순부터는 안정세를 찾는다.
단순하게 집값 오름세에 있어서 만은 가을 이사철 등 정부의 시장 정책에 따라 속된 말로 '미쳐버리는' 다른시점보다 떨어질 경우는 있다. 하지만 봄철은 투기꾼이 아닌 실수요자들이 시장의 주 소비자로 자리잡아 거래량과 집값 오름세 그리고 매매와 전세 등 '업종'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인 시장 호황기란 점에서 과히 연중 부동산시장흐름을 판단하는 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다. 이 것이 기자가 '부동산 밥'을 먹은 7년 동안 공식처럼 터득한 부동산시장의 속성이다.
그런데 올해 주택시장은 이 같은 봄철 특수가 온데 간데 없다. 참여정부의 '첫 대작'인 지난 2003년 10.29대책 이후 집값이 뚜렷한 안정세를 보였던 2004년에도 봄철은 정부의 10.29대책의 추가대책을 펴내야할 정도로 활황세를 보였다. IMF 이후부터 이런 봄 같지 않은 봄은 처음이다. 이 정도면 거의 부동산 시장이 빈사상태에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이같은 부동산 시장의 위축은 정부, 특히 청와대와 건설교통부에는 무한한 기쁨이다. 지난 2003년 들어선 참여정부는 부동산과는 악연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정부다.
(정작 본인들은 아니라고 줄곧 부정하고 있지만) 국가권력의 확대, 시장에 대한 지나친 개입 등이 뚜렸했던 참여정부는 공약사항부터 집값 안정을 들었으며 정부 출범직후부터 활발한 시장 규제를 통해 집값을 잡으려고 했지만 되레 집값은 하루가 멀다하고 급등세를 보였다. 부동산 투자 지침 중 첫번째가 '정부정책에 맞서지 말라'지만 정부 정책과 이른바 '복덕방 아줌마'들의 싸움은 복덕방 아줌마들의 완승으로 끝났다.
바닥 인기를 기고 있는 참여정부의 지지도 역시 부동산 정책 실패와 깊은 관련이 있다. 참여정부의 전통지지세력이었던 도시 서민들의 내집마련 실망감은 곧장 야당이 주장하는 '정부 심판론'을 대세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판국이니 참여정부와 범여권이 집값 하락에 기뻐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마치 원수와도 같았던 집값 오름세가 사라졌으니 정권 말기에 참여정부로선 체면치레를 단단히 한 셈이다.
하지만 정치권, 특히 범여권이 벌이고 있는 '집값 안정 내 덕분이오' 공방은 구태의연한 정치싸움을 떠나 '염치없는 정객들의 치졸한 과실따먹기'란 기분이 든다. 정치권 인사들이 주장하는 소리를 요약하자면, "그간 집값이 급등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 등 남들 탓이었지만 지금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는 것은 내 덕분"로 볼 수 있다. 이는 대선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치적이 있으면 모두 자신의 프로필에 넣고 싶어하는 심정에 기인한다.
우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당의장은 최근 "지금의 집값 안정은 나 때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즉 자신이 1월대책에서 분양 원가 공개를 강력히 제안했고 이것이 실현되면서 집값이 안정됐다는 게 김 전의장 발언의 요지. 실로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동네 중개업소 사장들에게 물어보라! 분양 원가 공개가 기존 집값을 잡는데 무슨 위력을 발휘했는지. 최근의 집값 안정세는 정부의 저분양가 아파트 공급확대 방안에 기인한다. 즉 지금보다 싼 새집일 나올 것인데 왜 비싼 오래된 집을 사느냐하는 것이 집값 안정세의 근본 원인인 셈이다.
그럼에도 김 전의장은 분양원가 공개를 관철시킨 자신의 공이라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내뱉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참여정부의 일원으로써의 자신의 책임은 면하는 대신 집값 안정의 열매는 가져오고, 아울러 '분양원가 공개'를 강조해 진보정치인으로써의 자신의 입지를 굳히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김 전의장 뿐 아니다. 범여권의 타 대선주자들도 틈만 나면 부동산 시장을 언급해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 하고 있다.
번번히 참여정부 국정에 딴지를 걸었던 야당도 조금이라도 부동산정책의 문제점을 파고들려는 노력에 여념이 없다.
지난 2006년 1월 정부는 8.31대책을 수립한 8개부서 30여명의 공무원들에게 집값 안정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훈장을 준 바 있다. 거듭된 부동산시장 불안으로 국민 신뢰를 잃은 정부로선 이 같은 '이벤트'를 벌일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심정 때문 이었을 것이다.
범 여권 등 지금의 정치권도 그때 상황과 다를 바 없다. 틈만 나면 공치사를 앞세우는 그들에게 훈장이라도 수여해야 그 뻔뻔한 '입'들이 닫혀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