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환의 저서 ‘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는 감상시와 수채화, 사진을 접목해 사실감을 극대화한다. 저자는 28개의 우리 역사문화유산에 대해 직접 보고 느낀 감흥을 감상시와 에세이로 옮겼다. 화가 나우린이 그림을 그려 한국적 정서를 극대화한다.
기존 답사기가 정보 전달과 역사 해석에 주력했다면 저자는 시와 그림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시의 배치는 시대상과 인물이 처한 상황을 함축적으로 담아내며 문화유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페이지 대부분을 할애한 그림과 사진은 일반 독자들도 지루함 없이 긴 답사기를 따라갈 수 있게 한다.
‘어린 단종이 피눈물 흘린 단절의 땅’ 청령포 부분을 보면 ‘용상! 버리려는 두려움/ 가지려는 탐욕/ 두 계단이 평행선을 긋고/ 결국 소년은 청령포에서 홀로 새벽을 맞네. (중략) 세종의 손자는 한(恨)을 남겼다/ 그리고 힘없이 목졸려 죽었다’라는 시를 읊조릴 수 있다. 시의 형식이 당시 단종의 심정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책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시의 편성이다. 저자는 중학 시절 고은 시인, 장석주 시인과 남다른 인연을 맺었다. 45년 전, 월간지 ‘학원(1970년 9월호)’이라는 잡지에 출품한 저자의 시 한편이 당선됐고, 당시 고은 시인이 심사했다. 장석주 시인과는 청운중 동창이다. 학창시절 학원지에 글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한 단짝이었다.
나우린 화가의 그림은 시라는 콘텐츠를 활용한 저자의 선택과 잘 어우러진다. 저자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그림이 펼쳐지는데 시와 그림이 가진 예술성이 딱딱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감수성을 더하며 감상에 젖게 한다.
여기에 ‘예송논쟁’과 같은 역사적 사건, 문화유산인 ‘추철회시문다완’, 다산의 가르침이었던 ‘곤초육수’ 등 다소 생소한 용어에 주석을 달아 설명한 저자의 친절함은 독서를 수월하게 한다. 당시 기록된 문헌과 기록을 원본 그대로 담아 이해를 돕기 위한 노력도 돋보인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비극의 역사현장을 다뤘다. 옥호루, 청령포, 광성보, 남한산성 등 7개 지역의 고된 역사가 있는 유적을 살펴본다. 2부에서는 우리 선조들의 수준 높은 예술성을 조망했다. 서화, 도자기, 훈민정음 등 9편이 수록됐다. 3부에서는 인물, 산, 길, 생태계 등 12편을 담았다. 내금강 답사기는 하루속히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더해져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저자는 답사 전문가가 아니다. 그는 기획재정부, 감사원 등에서 30년 이상을 역임한 경제 관료다. 그가 역사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남다른 역사 사랑에 기인한다. 저자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5’가 출간되던 10년 전부터 문화재에 빠져들었다. 답사기, 미술사, 역사, 불교 관련 서적 등을 탐독했고, 폐사지, 국보건축물, 유적지 등을 찾아다니며 현장의 느낌을 시로 옮겼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추천사에서 “전공 분야 이외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는 건 오늘날 융복합 시대에 바람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저자 배국환은 남도답사일번지 강진 태생으로 오랫동안 경제 관료로서 재정, 공기업, 혁신 등 중요한 일들을 했다. 기획재정부제2차관, 감사원 감사위원, 인천광역시 경제부시장 등을 역임했다. 제22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들어온 후 경제기획원, 기획예산처, 기획재정부에서 대부분 근무했다.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위해 고민하고 그걸 조직혁신에 응용하고자 했다. 현재 가천대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문화유산답사를 취미로 하고 있고 그걸 시와 에세이로 쓰길 즐긴다. 저서로 ‘생동하는SOC’, ‘한국의 재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