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人形)은 사람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물건을 의미합니다. 사람 중에는 장애인도 있고 비장애인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장애인 인형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생뚱맞게 웬 장애인 인형이냐고요? TV와 연예기획사, 대중문화계에서 설과 관련해 보낸 수백 개의 보도 자료에는 눈을 씻고 봐도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불우한 이웃에 관련된 행사나 프로그램, 작품은 하나도 없더군요.
설 특집뿐이겠습니까. MBC ‘똑? 똑! 키즈 스쿨’ 등 TV 유아 프로그램에도 장애아의 모습은 없습니다. 유아 프로그램은 늘 비장애아의 전유물이지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 다른 방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음악, 게임 등 우리 대중문화 전반에서도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는 철저히 외면받는 편이지요.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간혹 등장하는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 모습마저도 문제투성이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구 미디어가 동양 및 중동 문화에 대해 언급할 때 이국적·야만적 특성을 부여해 동양인과 동양문화를 타자로 규정할 뿐만 아니라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구 미디어가 동양인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우리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그렇게 표출합니다. 동정받을 대상으로 타자화하고 연민의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드러내는 방식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 존중하기보다는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지배적인 이미지와 서사를 반복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은 확대재생산 됩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규찬 교수가 ‘미디어 문화와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라는 논문에서 주장했듯 장애인을 비롯한 힘없는 타자, 그래서 더 많은 고통을 겪는 타인에게 목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 미디어의 매우 중요한 의무이며, 사회적으로 취약한 집단, 사회적 약자에게 다가가 이들 의사와 욕망, 정체와 대면하고, 이를 이야기로 풀어내며 사회적 관심사로 드러내는 것이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공적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의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시를 넘어 부정적인 재현의 결과는 말하기조차 민망한 열악한 복지 수준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부문별 사회복지지출 수준 국제비교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가 있어 노동시장에 완전 혹은 부분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경우, 국가가 부담하는 장애인 연금, 장애 수당 등 소득보장 급여를 측정한 ‘근로 무능력 부문’에서 한국은 OECD 조사 대상 28개국 중 최하위였습니다. 이번뿐만 아니라 매년 그러했습니다. 한국의 근로 무능력 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44%로 1위인 스웨덴의 5.09%에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OECD 평균 2.56%의 6분의 1에 불과합니다.
이번 설 연휴에는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장애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과 사회적 약자에 대해 더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형가게에서도 장애인 인형이 판매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