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잘못 나가면 A업체는 가맹주들로부터 손해배상 등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됩니다.”
지난달 18일 오후 3시 무렵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문자에 당황스러웠다. 곧 네 통의 문자가 연이어 도착했다. “소송진행상황을 정확히 파악 안 한 상태로 이런 기사를 낸 의도가 궁금하다”, “전국 700개 매장이 혼돈에 빠지면 책임질 수 있냐”라는 내용이었다. A업체가 특허법원에서 B업체 등을 소유한 모씨를 상대로 권리범위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기사가 나간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A업체 측 담당 변리사가 기사를 보고 항의 문자를 보낸 것이다.
다음 날 오후엔 선배의 전화가 울렸다. 소송 반대쪽 당사자인 B업체 측이었다. 그는 “기사를 잘 봤다”며 “몇몇 부분에 대해 추가로 사실 확인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기사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했다. 소송 당사자들은 기사가 자신들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판단하고 좋아하거나 불만을 토로했다.
기사가 지닌 무게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묵직했다. 처음 견뎌보는 그 무게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데 신이 나서 기사가 나간 뒤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짧게 쓰인 기사 한 개도 사건 당사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기자가 쓴 글은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을 유죄로 기억하게 할 수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꿔 인식하게 할 수도 있다.
특히 법원은 서로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다투는 마지막 공간이다. 재판은 승자와 패자만 존재하는 제로섬 게임이기에, 각자 자기가 승자가 되기 위해 애쓴다. 쌍방의 주장을 듣다보면 기자도 헷갈린다. 이쪽 이야기를 들으면 여기가 맞는 것 같고, 저쪽 이야기를 들으면 저기가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선배들은 “법원출입기자는 당사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중립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며 "사실에만 집중하라"고 강조한다.
“나는, 잘 써야하기 때문에 못 쓰고 있다. 우리 시대는 힘든 시대이고, 그 시대를 문장으로 축소할 만큼 충분히 이해해야 글은 쓰여지는 것이다.” 소설가 조세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세상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고민을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에 꾹꾹 눌러 담았다. 기사도 마찬가지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진실을 향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