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한 여행서가 아니라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가 곁들인 도시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가 암스테르담에서 어떻게 탄생하였는가를 다루고 있다. 또한 이 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슬쩍 눈을 감아줄 수 있는 관용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 도시의 천년 성장사와 인간사를 담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늪지와 갯벌을 개간하기 시작한 1100년 무렵부터 17세기 황금기와 2차 세계대전 이후 대항문화운동의 중심지로 부상하며 세상에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평자의 의견은 책 후미에 슬쩍 언급하는 것이 예외이지만 바쁜 마음에 딱 한 문장을 남기고 본격적인 서평을 시작하겠다. “정말 잘 쓴 책이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르네상스의 불꽃이 한창 타오르던 무렵, 작은 나라 네덜란드에는 해상무역의 중심지에서 상인들에 의해 엄청난 부와 거대한 혁신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럽 하면 르네상스가 모든 현상을 압도해 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네덜란드가 세상에 기여한 바를 간과하기 쉽다. 알다시피 네덜란드 국토는 수면 아래에 있다. 그곳 사람들의 역사는 바닷물과 싸워온 역사이다. 지금도 네덜란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숙연함을 느낀다.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력과 지력에 대한 감탄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암스테르담이 개인적 자유의 산실이지만 여기에 더해 협동심의 산실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모두 개인의 자유를 요구하지만, 반드시 남과 함께 일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이론으로, 그리고 관념으로도, 극단적인 조건들과 관계가 있으며 또한 모순적으로 느껴지겠지만 단결의 필요성과도 연관이 있다.” 3부로 구성된 책의 제목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책의 성격을 짐작해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 동인도회사, 자유주의가 꽃피다. 전 세계에 변화의 씨앗을 뿌리다. 경제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공존.
네덜란드 역사 속에 등장하였던 굵직굵직한 인물들의 삶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저자의 해박함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기독교 인문주의의 기수인 에라스무스의 인생, 영원한 감동을 안겨주는 화가 렘브란트의 인생 역정, 근대사상가의 효시로 통하는 스피노자 등이다.
책을 읽다가 우리 사회도 네덜란드 사람들의 합리주의와 실용주의 정신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17세기 한 프랑스인 장교는 네덜란드를 방문해 선장이 직접 자신의 숙사 바닥을 닦고 있는 광경을 보고 크게 놀란다. 지금도 네덜란드 사람들의 이런 특성은 변함이 없다. 작가는 지금도 저녁 찬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를 방문하는 암스테르담 시장을 자주 만나곤 한다고 한다. 큰 완장이든 작은 완장이든 차기만 하면 으스대는 우리 사회를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우리에게 귀담아들어 두라고 당부하는 소리 같은 문장을 남겼다. “네덜란드인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실용적이고 허튼짓을 용납하지 않는 민족이다. 이러한 기질을 네덜란드의 작가들은 바닷물과의 끝없는 싸움, 그리고 강한 개개인의 합동에서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대세였던 중세의 전형적인 사회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