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혼쭐’난 119 가짜환자

입력 2016-05-31 07:28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화재·구조·구급·재난 신고 전화번호인 119에는 ‘일일이 구한다’ 혹은 ‘일일이 구하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10월 경성 중앙전화국의 전화 교환방식이 수동에서 자동으로 전환되면서 도입되었으니 탄생한 지 80년이 넘었다. 세 자리 방식의 긴급전화는 영국에서 시작됐다. 1930년 경찰·소방 긴급환자 수송을 위한 ‘999 서비스’가 그 시초로, 영국은 지금까지도 999를 사용한다. 미국과 캐나다는 잘 알려진 대로 911이다. 나라마다 번호는 다르지만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재산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목적은 하나다.

그런데 생명줄과 같은 긴급전화가 철없는 시민들로 인해 수난을 겪어왔다. 장난질에 응대하는 동안 긴급구호가 절실한 시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일도 수차례 발생했다. 소방공무원인 친구의 오출동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날 정도다. 현관문이 안 열린 경우나 가정불화로 걸려오는 전화는 그나마 애교란다. “손가락이 아프니 중국집에 전화해서 대신 짬뽕 좀 시켜주실래요?” “오늘 기분이 우울하니 와서 노래 좀 불러 주세요”….

며칠 전 통쾌한 보도가 있었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는 사람도 있다. 꾀병으로 구급차를 부른 뒤 치료도 받지 않고 사라진 20대 남성에게 2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는 뉴스다. 소방당국은 구급차 안에서 그가 구급대원에게 일삼은 폭언과 폭행에 대해서는 소방활동 방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는 등 혼쭐을 냈다. 상습, 다용(多用), 비(非)응급, 만취 등 네 가지 요소를 갖춘 악성 시민 ‘F4’들도 혼쭐이 나기 전에 각성해야 할 것이다.

혼쭐은 혼을 강조하는 말로 ‘혼쭐이 나다’ ‘혼쭐이 빠지다’ 등으로 활용된다 . ‘혼줄’로 잘못 알고 쓰는 이들이 많은데, 우리말 원칙 가운데 된소리 적는 요령만 알면 바로잡을 수 있다. 어떤 말의 형태를 살려 적을 특별한 근거가 없을 때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규칙이다. 혼쭐의 ‘줄’은 어디에서 온 말인지 근거나 유래를 알 수 없으므로 소리 나는 대로 혼쭐로 써야 한다.

짝을 이루는 동료 혹은 뜻이 맞거나 매우 친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 짝꿍에도 같은 규칙이 적용된다. ‘짝’과 결합한 ‘궁’이 어디에서 온 말인지 알 수가 없으므로 고민할 것도 없이 소리 나는 대로 짝꿍이라고 쓰면 된다. 지방자치단체 봉사단 중에 ‘짝궁’이 들어간 단체들이 있는데, ‘짝궁’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면 짝꿍으로 고쳐 쓸 것을 권한다. 사랑을 실천하는 단체 이름에 존재하지 않는 우리말이 들어 있어, 자칫 좋은 의미가 퇴색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본뜻이 살아 있어 원형대로 써야 하는 말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일이 더 손댈 것도 없이 틀어지다’라는 뜻의 관용구 ‘볼 장 다 보다’가 대표적이다. 볼 장은 [볼짱]으로 발음되지만, 이때의 장은 한자 ‘場’의 뜻으로 쓰였으므로 원래 형태대로 써야 한다. 이 관용구는 또 어려운 띄어쓰기의 용례로도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볼장 다봤다’ 식으로 붙여 쓰는 이가 많다. 하지만 각각의 단어는 띄어 쓴다는 규칙에 따라 ‘볼 장 다 보다’라고 써야 바르다.

생사가 갈리는 응급 상황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119 대원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처럼 “용기란 긴박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도덕적 힘”이라면 이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의 화신’이 아닐까.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당원 게시판 논란'에 연일 파열음…與 균열 심화
  • 코스닥·나스닥, 20년간 시총 증가율 비슷했지만…지수 상승률은 ‘딴판’
  • 李 열흘만에 또 사법 리스크…두 번째 고비 넘길까
  • 성장률 적신호 속 '추경 해프닝'…건전재정 기조 흔들?
  • 민경훈, 뭉클한 결혼식 현장 공개…강호동도 울린 결혼 서약
  • [이슈Law] 연달아 터지는 ‘아트테크’ 사기 의혹…이중 구조에 주목
  • 유럽 최대 배터리사 파산 신청에…골드만삭스 9억 달러 날렸다
  •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서 “한반도 노동자,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서 노동”
  • 오늘의 상승종목

  • 11.22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5,043,000
    • -0.64%
    • 이더리움
    • 4,665,000
    • +0.84%
    • 비트코인 캐시
    • 705,000
    • -3.36%
    • 리플
    • 1,988
    • -6.23%
    • 솔라나
    • 348,300
    • -1.75%
    • 에이다
    • 1,434
    • -3.43%
    • 이오스
    • 1,191
    • +12.15%
    • 트론
    • 294
    • -1.34%
    • 스텔라루멘
    • 799
    • +33.17%
    • 비트코인에스브이
    • 96,600
    • -2.42%
    • 체인링크
    • 23,730
    • +2.82%
    • 샌드박스
    • 865
    • +59.89%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