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생명줄과 같은 긴급전화가 철없는 시민들로 인해 수난을 겪어왔다. 장난질에 응대하는 동안 긴급구호가 절실한 시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일도 수차례 발생했다. 소방공무원인 친구의 오출동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날 정도다. 현관문이 안 열린 경우나 가정불화로 걸려오는 전화는 그나마 애교란다. “손가락이 아프니 중국집에 전화해서 대신 짬뽕 좀 시켜주실래요?” “오늘 기분이 우울하니 와서 노래 좀 불러 주세요”….
며칠 전 통쾌한 보도가 있었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는 사람도 있다. 꾀병으로 구급차를 부른 뒤 치료도 받지 않고 사라진 20대 남성에게 2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는 뉴스다. 소방당국은 구급차 안에서 그가 구급대원에게 일삼은 폭언과 폭행에 대해서는 소방활동 방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는 등 혼쭐을 냈다. 상습, 다용(多用), 비(非)응급, 만취 등 네 가지 요소를 갖춘 악성 시민 ‘F4’들도 혼쭐이 나기 전에 각성해야 할 것이다.
혼쭐은 혼을 강조하는 말로 ‘혼쭐이 나다’ ‘혼쭐이 빠지다’ 등으로 활용된다 . ‘혼줄’로 잘못 알고 쓰는 이들이 많은데, 우리말 원칙 가운데 된소리 적는 요령만 알면 바로잡을 수 있다. 어떤 말의 형태를 살려 적을 특별한 근거가 없을 때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규칙이다. 혼쭐의 ‘줄’은 어디에서 온 말인지 근거나 유래를 알 수 없으므로 소리 나는 대로 혼쭐로 써야 한다.
짝을 이루는 동료 혹은 뜻이 맞거나 매우 친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 짝꿍에도 같은 규칙이 적용된다. ‘짝’과 결합한 ‘궁’이 어디에서 온 말인지 알 수가 없으므로 고민할 것도 없이 소리 나는 대로 짝꿍이라고 쓰면 된다. 지방자치단체 봉사단 중에 ‘짝궁’이 들어간 단체들이 있는데, ‘짝궁’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면 짝꿍으로 고쳐 쓸 것을 권한다. 사랑을 실천하는 단체 이름에 존재하지 않는 우리말이 들어 있어, 자칫 좋은 의미가 퇴색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본뜻이 살아 있어 원형대로 써야 하는 말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일이 더 손댈 것도 없이 틀어지다’라는 뜻의 관용구 ‘볼 장 다 보다’가 대표적이다. 볼 장은 [볼짱]으로 발음되지만, 이때의 장은 한자 ‘場’의 뜻으로 쓰였으므로 원래 형태대로 써야 한다. 이 관용구는 또 어려운 띄어쓰기의 용례로도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볼장 다봤다’ 식으로 붙여 쓰는 이가 많다. 하지만 각각의 단어는 띄어 쓴다는 규칙에 따라 ‘볼 장 다 보다’라고 써야 바르다.
생사가 갈리는 응급 상황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119 대원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처럼 “용기란 긴박한 상황에서 발휘되는 도덕적 힘”이라면 이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의 화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