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예방접종 백신으로 널리 쓰이는 녹십자 플루미스트(FluMist)가 기면증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대법원 판결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졸음 유발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 피해자에게 정부가 직접 보상해야 한다는 첫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이모(33) 씨가 질병관리본부를 상대로 낸 장애일시보상금 부지급 결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6일 밝혔다. 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이씨는 진료비와 간병비를 포함한 일시보상금 682만원을 지급받았다.
플루미스트는 신종플루가 유행할 당시 대표적인 치료제였던 타미플루가 부족하자 공포심을 느꼈던 일반인들이 찾았던 의약품이다. 주사제형이 아닌 코에 뿌리는 방식이라 어린 아이들에게도 많이 투여됐다. 국내에서 2009년 출시된 이후 매년 매출이 증가한 데 반해 부작용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외 연구에서 기면증 인과관계가 인정된 신종인플루엔자 백신은 팬덤릭스 정도다.
회사원 이씨는 2010년 회사 지시로 녹십자 건강증진센터에서 계절독감에 대한 예방접종을 했다. 녹십자에서 들여온 플루미스트 백신이었다. 접종 직후 낮에 졸음이 쏟아지는 증상을 느끼고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던 이씨는 이듬해 2월 쓰러졌다. 이씨의 기면 증세는 계속됐고, 같은 해 3월부터 8월까지 총 네차례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냈다.
이씨를 진단한 의사들은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있을 만큼의 기면증이 있다는 평가와 함께 미국의학협회(AMA) 장해평가 기준 3단계에 해당하는 후유장해진단(노동능력 상실율 69%)을 내렸다. 그러자 이씨는 2013년 5월 장애보상금을 지급하라며 질병관리본부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 2심 재판부는 "이씨의 예방접종과 기면증 발병 사이에는 시간적·공간적 밀접성이 존재하고, 의학이론이나 경험칙으로 이씨의 기면증 발병이 예방접종 때문에 발생했다고 추론하는 게 가능하다"고 봤다. 대법원 역시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감염예방법 피해보상 규정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예방접종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에 대한 피해보상은 개인의 손해를 보전해주는 사적인 구제기능 외에도 이를 통해 예방접종의 부작용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국민을 안심시킴으로써 예방접종에 대한 국민적 협조를 얻기 위한 공적인 기능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감염예방법 71조는 보상을 받기 위해 요구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적 사실관계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이는 정도면 된다고 나와있다.
재판부는 이씨가 예방접종 당시 만 27세였고, 회사에 입사해 평소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했으며 가족력이 없었던 점도 고려했다. 이씨는 기면병 발병 이후 일상생활의 어려움으로 직장을 그만둔 상태다.
재판부는 다만 "인플루엔자 백신의 예방접종과 기면병 발병 사이의 연관성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규명된 단계는 아니고 관련성이 있다는 의견 등 여러 견해가 제시되고 있어 추가적인 자료수집과 면역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