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금 근로자들이 너무나 많은 일에 치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5월 발표한 통계(‘2016 더 나은 삶의 질 지수’)를 보면 한국 임금 근로자 중 지난해 주 50시간 이상 일한 사람의 비율은 23.12%로, OECD 평균보다 10%포인트 이상이나 높았다. ‘일과 삶의 균형’에서는 OECD 38개국 중 터키와 멕시코에 이어 끝에서 세 번째인 36위에 그쳤다. 2004년 주 5일 근무제(40시간 노동)가 도입된 지 10년이 더 지났는데도 대한민국의 월급쟁이들은 여전히 직장과 일에 많은 시간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미래 학자 앨빈 토플러(1928~ )가 30년도 훨씬 전인 1980년에 써낸 ‘제3의 물결’에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Teleworking’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소개한 후 ‘재택근무’라는 개념-직장과 먼 곳에서(tele) 일한다(working)-은 일반화됐다.
이후 정보통신기술이 가장 급속히, 가장 먼저 산업화됐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IT기업들이 직원 만족도 제고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사무실 유지관리비를 포함한 비용 절감이라는 장점에 착안, 재택근무를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잘나가는 외국계 IT회사들을 시작으로 몇몇 기업들이 이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기도 했지만 보다시피 아직까지도 남의 일로 부러워만 하는 실정이다.
기업의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건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게 국가 과제인 건 분명하다. 일은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많이 하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의 2013년 1인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9.9달러로, 미국의 51%, 독일의 59%, 일본의 83%에 불과했다. 죽도록 일해도 이처럼 생산성이 떨어지는 건 일을 했다는 시간에 일은 하지 않고 상사의 눈치나 보고, 회의다 회식(폭탄주!)이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그런 식으로 일을 해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한국 대기업의 프랑스 법인장을 지낸 에릭 쉬르데주는 명령과 복종으로 연결된 권위주의 관행이 뿌리 깊은 한국의 기업문화를 꼬집으면서 “영하 12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폭탄주를 마시며 회식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으면 한국은 글로벌 시대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걱정 겸 경고를 보냈다.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그들은 미쳤다. 한국인이다’라는 제목의 책에 담아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했다.
한국인이 ‘일에 미친 척’한 건 이보다 훨씬 전이다. 지난 1991년 말 범국가적으로 ‘30분 일 더 하기 운동’이 벌어진 게 가장 확실한 증거다. 당시 언론보도 한 토막.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으로부터 당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지금 국민들 사이에는 우리가 처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10% 절약운동, 30분 일 더 하기 등 새로운 기풍 조성을 위한 실천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며 이 같은 점을 모든 당원에게 주지시켜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1991년 11월 17일자 연합뉴스 기사이다. 이 보도 이후 새마을운동본부를 필두로 관공서와 기업, 협동조합 등이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이 운동에 동참했다는 뉴스가 줄지어 나온다. 토플러가 새로운 근무형태를 예언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 운동을 경멸하고 조롱했던 한 조직개혁 전문가는 “문민정부 초기에도 이 운동이 이어졌지만 그 결과는 외환위기였다”고 단정했다. 그는 또 “외환위기가 닥친 직후 밤 11시 넘어 지방출장에서 돌아온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많은 직원들이 퇴근한 걸 알고는 ‘이렇게 일찍 퇴근을 하면 일은 누가 하느냐’고 호통을 쳤지만 지금 대우그룹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직원을 붙잡아만 두면 생산성이 오르고 기업이 발전한다는 패러다임은 지나간 시대의 진리였을 뿐이라는 걸 그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재택근무를 하건 다른 방법을 동원하건 지금 같은 터무니없는 노동시간은 합리적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일 때문에 아이를 안 낳는다는 젊은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가? 젊은 지아비는 새벽같이 나가서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오니 아이를 만들 수 없고, 젊은 지어미는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으니 아이를 낳기 싫어한다.
도요타는 직원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나중에 자동차를 살 사람도 없게 된다, 그러니 재택근무를 하게 해서라도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고, 기업 차원을 뛰어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서도, 회장님 사장님 가운데서도 이런 넓고 높은 차원에서 생각하는 분들이 없진 않을 것이다.
여담으로, 스코트 아담스(1957~ )라는 미국 만화가가 그리는 딜버트(Dilbert)라는 만화 한 컷이 생각난다. 월급쟁이 딜버트가 컴퓨터 앞에 벌거벗고 앉아 일하면서 “재택근무를 한 지 4일 만에 옷이라는 게 전혀 필요 없다는 걸 알았지”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출산과 관련된 함의(含意)가 없지 않다. 저작권 문제가 아니라면 여기에 소개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