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은행들은 만기일이 지난 양도성예금(CD)에도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또 공인인증서 분실이나 해킹 등의 신고를 받고도 은행 조치가 늦어져 피해가 발생하면 은행도 일정 부분 책임을 지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일 이 같은 내용의 29개 은행ㆍ저축은행 불공정약관에 대해 금융위원회에 시정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은행업계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CD 약관, 대출거래약정서, 모바일금융 서비스 이용약관, 현금카드 이용약관 등 총 750개 약관에 대해 심사를 진행했다. 약관법에 위반되면 금융위에 시정을 요청한다. 금융위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공정위의 요청에 응해야 한다.
공정위는 우선 만기일이 지난 양도성예금의 이자를 지급하지 않은 것은 만기 이후에도 이자 수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고객에게 이자를 주지 않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고객에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양도성 예금에 대한 약관 개정을 요구했다. 은행에서 파는 양도성 예금은 일반 정기예금과 유사하지만, 타인에게 팔 수 있는 무기명 상품이다.
공정위는 또 대출원리금 이체 등 결제자금이 부족할 때 결제되는 출금 순서를 은행이 정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약관도 불공정하다고 판단했다. 민법에 따르면 변제자에게 금융기관보다 먼저 변제 순서를 정할 권리를 주고 있다. 고객 입장에선 대출 이율이 높은 대출금을 먼저 갚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선택권을 고객에게 주는 것이다.
공정위는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등을 분실하거나 도난당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한 책임을 신고 여부와 무관하게 모두 고객이 부담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도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고객이 은행에 분실ㆍ도난 사실을 알렸을 때는 제3자가 분실ㆍ도난 정보를 사용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은행이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또 해킹 등의 신고를 받고 나서 계좌 이용 중지 등의 조치를 늦게 해 그 사이 피해가 발생하면,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은행에도 배상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카드, 유심(USIM)칩 등을 분실했을 때 신고방식을 “인감 및 통장을 지참하고”, “서면으로 신고해야” 등으로 제한한 조항도 불공정약관으로 꼽혔다.
공정위는 매월 최소상환금액의 납부가 90일 이상 지연되면 은행에 대한 모든 채무를 즉시 상환하기로 한 조항, 이동통신사 등 외부서비스업체의 과실로 인한 장애에 대해 은행이 책임지지 않도록 한 조항도 불공정하다고 봤다.
또 은행 사정을 이유로 고객의 대여금고를 임의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한 조항, 고객이 대여금고를 제대로 잠그지 않았을 때 은행의 면책을 명시한 조항, 대금을 결제하지 않은 거래처의 모든 계정에 대해 은행이 결제할 수 있도록 한 조항 등도 불공정약관으로 지적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