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이 달아오르고 보안관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져 TV 진행자가 목소리를 낮추라고 말하자 그는 “지난주에 경찰 다섯 명이 살해되고 이번 주에 다시 세 명이 살해되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나한테 목소리를 낮추라고 말해요?”라면서 날이 선 눈으로 기자의 말을 맞받아쳤습니다. 미국 TV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입니다. 당황한 기자가 얼른 광고를 내보내며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했습니다.
광고가 끝난 뒤 인터뷰는 계속됐습니다. 그러나 보안관의 감정은 누그러들지 않았고, 기자가 질문을 하면 대답 대신 질문으로 반격했습니다. 경찰이 살해된 뒤 경찰 측은 평화를 호소했는데, 거기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보안관이 “당신은 그 말을 단 1분도 안 믿었지요?”라고 되묻자 기자는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어 “그러면 배턴루지와 댈러스에서 경찰의 죽음 앞에서 시위를 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것은?”이라고 두 번씩 되물었습니다. 경찰이 연속적으로 살해되는데도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시위를 멈추지 않는 것에 대해 기자의 의견을 물은 것이었습니다. 기자는 얼떨결에 “모른다,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기자와 경찰 둘 다 흑인이었습니다. 단, 레먼은 진보 성향의 언론인이고, 클라크는 보수 성향의 흑인 경찰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흑인이 ‘블랙 라이브스 매터’를 적극 찬성하는데, 클라크는 이를 아주 혹독하게 비판하는 소수 중의 소수 흑인입니다. 이로 인해 클라크는 미국 경찰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부상했고 보수 측의 총애를 받으면서 공화당 전당대회에 연사로 참가해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을 공격했습니다.
흑인 기자와 흑인 경찰 간의 이 대화는 지금 미국에 몸살을 앓게 하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에 관한 문제점을 함축적으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2013년 흑인 소년을 죽인 방범요원이 무죄 평결을 받고 방면된 후 이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이 운동은 최근 미네소타 주 신호등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던 흑인 남성이 경찰의 총에 죽은 뒤, 곧이어 루이지애나 슈퍼마켓 앞에서 CD를 팔던 흑인이 경찰 총에 숨지면서 다시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7월 6일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를 호위하던 경찰을 향해 빌딩 위에서 매복하고 있던 저격수의 총알이 날아와 경찰 다섯 명이 쓰러졌습니다. 2주일 뒤 루이지애나 주 배턴루지에서 다시 경찰 세 명이 저격수의 총에 숨졌습니다. 범인은 모두 군인 출신의 흑인이고 희생자는 모두 백인 경찰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을 들끓게 했습니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어느 나라보다도 경찰의 권위와 권한이 막강합니다. 미국에서는 술 취한 시민이 파출소를 부수거나 시위대가 경찰을 폭행하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경찰에 말대꾸를 하거나 반항을 하면 그 자리에서 수갑을 채우고, 손을 들라고 했을 때 들지 않거나 손에 흉기를 들었다고 판단되면 경찰은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을 쏩니다. 법치와 질서, 안전의 핵심이 경찰 공권력입니다. 이런 경찰 문화에서 연이어 경찰이 여덟 명이나 저격당했다는 것은 공권력이 도전받는 경악입니다.
경찰 살해범은 모두 흑인 인종주의자로 백인 경찰을 증오한 사람입니다. 경찰 살해 사건이 연발하면서 ‘블랙 라이브스 매터’가 다소 주춤하고 수세에 몰리는 듯했으나 시위는 계속되었습니다. 밀워키 카운티 보안관이 CNN 기자에게 방송에서까지 감정 표현을 한 것은 경찰의 깊은 분노와 좌절을 대변해주는 것입니다. 경찰을 변호하는 사람들은 시신을 앞에 두고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시위를 벌이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은 이성을 잃은 증오 운동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백인 경찰이 죄 없는 흑인을 죽이고, 재판에서 무죄가 되는 상황에서 원인 제공은 백인 경찰에 있다고 주장하고 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경찰 측은 흑인들이 경찰에 희생되는 것은 흑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찰의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반항했기 때문에 경찰의 자위권을 위해 총을 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경찰 입장에서는 원인 제공이 경찰이 아니라 흑인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양측의 팽팽한 주장은 합일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가치관과 시각에 따라 갈라지고 있습니다. 흑인들이 백인 경찰로부터 부당하게 차별받는 것도 미국의 엄연한 현실이고, 또 흑인의 범죄율이 높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대도시에서 흑인이 백인보다 불심검문당하는 비율은 다섯 배가 높습니다. 흑인 동네의 범죄는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흑인 인구가 미국의 13%인데 미국 살인 범죄의 절반 이상을 흑인이 차지하고, 감옥에 있는 젊은이의 40%가 흑인이고, 흑인 남성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감옥으로 가는 게 현실입니다.
흑인이 흑인을 죽이는 흑인 범죄의 가장 대표적인 도시가 시카고입니다. 시카고 흑인 동네에서는 살인 사건 없이 지나가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지난 15년간 시카고에서 흑인이 흑인에 의해 살해된 숫자가 7500명이 넘습니다. 이라크 전쟁에서 죽은 미군보다 많습니다. 흑인 동네에 살면 우범지대의 분위기에 휩쓸리고 결국 범죄자로 가는 길이 가까워집니다. 백인 경찰은 흑인 동네에 가기를 꺼리고 흑인 동네의 범죄는 방치 수준입니다.
흑인들을 거칠고 차별적으로 다루는 경찰의 잘못이 먼저냐, 경찰로 하여금 거칠게 다룰 수밖에 없도록 만든 흑인 범죄 문화가 먼저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처럼 해답이 없습니다. 인종적 민감성 때문에 미국 언론은 이 문제를 솔직하게 다루지 못합니다. 흑인들에 대한 경찰의 차별적 취급은 말할 수 있으나 경찰이 흑인을 차별적으로 다루는 것이 흑인 범죄 문화 때문이라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흑인 지도자들은 ‘블랙 라이브스 매터’를 1960년대 이후 제2 민권운동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비판적인 사람들은 민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오늘의 이 현상을 목격한다면 한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은 경찰의 과잉 차별 단속의 문제점을 제기했으나 본질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은 계속되겠지만 문제 해결책은 아직 보이지가 않습니다.
흑인 목숨[도-이] 중요하다…토씨 번역에 따라 달라지는 인종문제 관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일부 한국 언론에서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라는 말을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정확한 번역인지에 대해 이의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 말 뒤에 숨은 뜻이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글자 그대로의 번역은 ‘흑인 생명이 중요하다’입니다.
‘도’와 ‘이’의 토씨 번역이 중요한 것은 이 표현이 미국의 인종 대립의 한가운데에 있고, 이 표현의 의미 때문에 인종 논쟁이 더욱 가열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의 모호함과 왜곡 가능성으로 인해 ‘All Lives Matter(모든 생명이 중요하다)’란 도전이 나오고, 심지어, ‘White Lives Matter(백인 생명이 중요하다)’라는 인종적 반발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말의 시작은 2013년 흑인 소년 트레이반 마틴(Trayvon Martin)을 죽인 방범요원 조지 짐머만(George Zimmerman)이 무죄 평결을 받고 방면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트위터에서 #BlackLivesMatter란 해시태그(hashtag)가 나타난 뒤 이 표현이 흑인 권리 운동의 상징어로 되었습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은 백인 경찰이 흑인들을 차별적으로 취급하고, 백인 경찰에 의해 흑인이 부당하게 살해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미국의 경찰과 사법의 불공평을 문제점으로 제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