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정책이 ‘눈 가리고 아웅 하기’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이민자 유입이나 독립적 사법권을 주장하면서도 EU라는 단일시장 접근 권한을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순적 행동에 EU 안팎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16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이 정부가 브렉시트 이후에도 EU 측에 예산을 계속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메이 총리는 영국의 핵심 사업인 보험과 은행 등 금융부문에 대한 EU 시장 접근권을 유지하기 위해 EU 예산 지원을 이어나가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일부 내각 인사들이 FT에 영국 정부가 EU의 예산에 수십억 파운드를 계속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귀뜸했다. 한 익명의 장관급 인사는 “이 방안에 대해 설명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럽다”면서도 “메이 총리가 이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집권여당인 보수당의 한 고위 인사는 “메이 총리가 이 부분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내각 인사는 EU 탈퇴 협상이 진행되는 과도기인 2019년까지 EU에 대한 분담금 집행이 계속 이뤄지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2019년 탈퇴 협상이 결론난 이후에도 계속 EU에 대한 예산집행을 이어가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메이 총리는 지난 14일 일본 완성차 업체 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회장과 만나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에 소재한 닛산 공장의 무역조건이 변경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여기에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자율주행차 시험 규제체계가 더욱 기업 친화적일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사실상 브렉시트 여파를 우려한 완성차 기업들 붙잡기에 메이 총리가 직접 나선 것이다. 앞서 곤 회장은 브렉시트로 인해 EU가 영국에 법인세 과세를 부과하게 된다면 투자를 철회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영국 정부는 이민자 유입을 막기 위한 국경선 통제권을 비롯해 EU로부터 간섭을 피하기 위해 독립적 사법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독일을 비롯한 EU 회원국은 EU 금융시장이 패스포팅 제도로 거대 단일 시장으로 묶여 있고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패스포팅 권한을 잃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2000억 파운드(약 277조 원)라는 거대시장과 결별하게 되는 것이다. 보수 당내에서도 EU 단일시장 접근권한 상실에 대한 우려로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EU 예산에 대한 분담금을 계속 내, EU의 안보 프로그램을 지원할 경우 영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강경파들은 EU 단일시장 접근권을 잃더라도 자주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EU 예산 집행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면 영국 내부의 EU 회의론자들은 물론 EU 자체에서도 거센 반발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2010~2014년 사이에 EU 예산지원으로 집행한 예산은 연평균 71억 파운드였다.
한편 브렉시트 강경파의 선봉에 있는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이 지난 2월 브렉시트 반대 의견을 담은 기고를 썼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에서 EU 탈퇴 결과로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